폰데어라이엔 집권 2기 EU 통상정책 : 심화되는 美·中 경쟁 속 생존 전략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2기 EU 집행위원회가 2024년 12월 1일 공식 출범했다. 폰 데어 라이엔 1기 집행위원회는 그린딜(Green Deal),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공급망실사지침(CSDDD)과 같이 환경·인권 등 ‘가치(value)’에 기반한 다수의 입법과 정책을 추진해왔다. 반면 폰 데어 라이엔 2기는 ▲EU 경제 위축 및 정치적 동력 약화, ▲중국발 공급과잉 및 美·中 대비 산업 경쟁력 약화, ▲차기 美 정부의 관세조치에 따른 통상마찰 가능성의 ‘삼중고’에 맞서 산업 경쟁력 및 경제안보 정책 강화를 예고하고 있다.
EU의 산업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폰 데어 라이엔 2기 집행위의 정책은 ①친환경 투자 확대로 EU 산업경쟁력 견인, ②美, 中에 버금가는 대규모 투자, ③기업 발목 잡는 과도한 규제 완화로 압축할 수 있다. 우선 친환경 기술·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통해 기후 목표를 달성하면서도 산업경쟁력을 높이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전략이다. 기존 그린딜은 산업경쟁력에 방점을 둔 ‘청정산업딜(Clean Industrial Deal)’로 전환된다. 그 과정에서 EU 역내 산업이 수혜를 받을 수 있도록 공공조달에서 역내산 제품 조달을 확대할 방침이며, 공급 측면의 투자뿐만 아니라 수요를 동시에 창출하기 위해 자동차 등 업계에 친환경 철강 사용 요건을 부과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美·中과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마리오 드라기 前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연간 8천억 유로 수준의 추가 투자가 필요하다고 제언하였고, 투자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자본시장연합 구축 등 방안은 집행위원회 정책 의제에도 반영되었다. 기업의 높은 규제 준수 비용을 경감하기 위해 공급망실사지침 등 기존 시행 중인 규제의 보고의무도 일부 완화된다. 다만 이미 제시된 목표나 주요 의무는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집행위는 삼림벌채금지규정(EUDR) 시행을 1년 연기했으나 기업 실사 의무를 완화하는 방안은 수용하지 않았고, ‘자동차 CO₂ 배출 규제 규정’에 대해서도 전기 기반 합성연료(e-fuel)는 허용하되 감축 목표 자체의 개정에는 단호한 반대 입장을 보였다.
중국의 안보 위협, EU 역내 시장 왜곡으로부터 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경제안보 정책도 더욱 강화된다. ①반덤핑·상계관세 등 수입규제, ②역외보조금규정(FSR), ③수출통제 및 투자제한 조치, ④對EU FDI에 대한 ‘유럽산 사용’ 등 조건 제시가 주요 수단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집행위원회는 이미 중국 공급과잉에 대응해 수입규제를 확대하고 있으며, 美 트럼프 당선인이 예고한 대중국 고율 관세 부과 시 중국산의 EU시장 유입이 늘어날 수 있어, EU의 수입규제 조치가 더욱 증가할 수 있다. 상계관세와 다른 역외보조금규정은 기존 수입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던 공공조달, 기업결합 분야에서 특정 제3국 기업을 직접 규제할 수 있고, 집행위원회가 광범위한 재량을 가진다는 등의 이점이 있어 적용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안보 관련 회원국별 상이한 규범과 정책 기준을 조화시키고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EU 차원의 수출통제 및 투자제한 정책 수립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이와 더불어 중국 기업의 EU 역내 그린필드 투자에 대한 장벽도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과 달리 EU는 역내 제조업 활성화, 일자리 창출, 중국의 제조 노하우 획득을 목적으로 중국 기업의 투자에 상대적으로 개방적 기조를 취해왔다. 그러나 저가 중국 브랜드의 시장 잠식과 중국 투자 생산시설의 전후방 산업 파급효과가 기대에 못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EU 내부에서 증가하고 있다. 이에 집행위원회는 EU 역내 산업으로의 낙수효과를 유도하기 위해 중국기업의 투자에 역내산 부품 사용, 기술 이전 등의 조건을 제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강화되는 대중국 경제안보 조치로 인해 중국 기업들의 EU 시장 점유율 확대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 그러나 EU의 대중국 무역, 투자 의존도가 여전히 높아 미국과 같은 높은 관세조치나 규제에 나설 가능성은 낮으며, 중국산 수입이나 중국의 對EU 외국인직접투자 유입을 막기엔 역부족인 상황이다. 결국 EU 시장에서 한중간 경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며, 우리 기업의 반사이익도 기대에 못 미칠 수 있다. 한국산 에폭시 수지에 대한 반덤핑 조사 사례와 같이 저가 중국산 유입을 저지하기 위한 수입규제 강화로 한국산 제품이 동반 제소되는 등 간접적 영향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한편 미국의 기후정책 퇴보 가능성에도 EU는 친환경 정책 기조를 유지하되 규제보다는 투자 확대로 접근하겠다는 방침이다. 친환경 분야 투자 확대 및 규제 완화는 EU에서 대규모 공장 신·증설을 진행 중인 한국 전기차, 배터리 기업 및 친환경 인프라·기술 분야 기업에게는 기회 요인이다. 다만 미국 주도의 리쇼어링 정책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친환경 산업 투자에 대한 유인책뿐만 아니라 역내 제조업 역량을 보호, 강화하고자 하는 보호주의 조치도 동반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제조업 투자 시 역내 전후방 연관 산업에 미치는 경제적 파급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친환경 기준을 내세운 역내산 원재료·부품 조달 요건이 도입될 수 있다. 향후 공급망실사지침 등 규제에 따른 보고 의무가 완화될 경우, 대기업 협력 또는 EU 공급망에 참여한 중소기업에 대한 직·간접 부담이 경감될 수 있다는 것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기업에 부과되는 의무 자체가 축소되거나 철회될 가능성은 낮아 지속적인 규제 대응 노력이 필요하다.
<자세한 내용은 붙임의 원문 보고서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