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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매킨리 관세론'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오해(칼 로브, 선거전략가, ‘윌리엄 매킨리의 승리’ 저자)

작성 2025.02.06 조회 813

[기고]'매킨리 관세론'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오해(칼 로브, 선거전략가, ‘윌리엄 매킨리의 승리’ 저자) 

 

O 트럼프 대통령이 전임 대통령 중 유독 윌리엄 매킨리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는데, 그 이유는 단 하나, 관세 때문임. 허나, 정작 그 관세론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 

 

- 남북전쟁 참전용사 출신으로 하원의원과 오하이오 주지사를 거쳐 1890년대 후반 제25대 대통령에 당선된 매킨리는 대공황에 허덕이던 미국을 다시 번영으로 이끌었고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뒀으며, 급격한 산업화가 진행되던 이른바 ‘도금시대(The Gilded Age)’의 정치적 교착 상태를 깨고 장장 36년간 지속된 공화당의 장기 집권기를 열었음. 이렇듯 매킨리 대통령이 추앙과 존경을 받을 만한 많은 업적을 남긴 것은 사실이나, 트럼프 대통령이 그를 선망하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관세론 때문임. 심지어 취임 연설에서 매킨리 전 대통령에 대해 “관세로 미국을 부유하게 만들었다"며 극찬했을 정도로 남다른 애정을 드러낸 바 있음.

 

- 하지만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매킨리의 관세정책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임. 우선 매킨리 재임 시절 미국은 지금과 매우 다른 시대였음. 그가 재선에 성공했던 1900년 당시 연방지출 규모는 GDP의 3%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연방지출은 23%에 달했음. 3조 3천억 달러 규모의 수입품에 대한 관세로 6조 8천억 달러가 넘는 연방예산을 충당한다는 건 전혀 불가능한 일임. 매킨리가 집권하던 시대에는 관세가 연방 세입의 거의 절반에 달할 정도로 예산의 필수 요소였지만 2024년에는 연방 세입의 48%가 개인 소득세로 충당되었고, 관세 비중은 1.9%에 불과했음. 

 

-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경제가 성장하고 변화함에 따라 매킨리의 관세관도 바뀌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 매킨리는 1885년만 하더라도 유권자들에게 공개적으로 ‘강경 보호무역주의자’임을 자처했으나, 1890년 하원 세입위원장 시절에는 관세 인상을 요구하는 재계 리더들에게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을 말하라고 했고 이후 통과된 관세법안에 대해서는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더 높은 폭의 관세 인상을 요구하는 상원 수정안을 어쩔 수 없이 반영할 수 밖에 없었다고 토로하면서, 관세율이 너무 높으면 수입액이 줄어들고 그만큼 세수도 감소할 것이라고 경고했음. 더욱이 그는 산업화와 기술 혁신이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간파했음. 산업화와 기술 혁신으로 국내 생산이 늘어남에 따라 국가 번영을 위해서는 외국과의 무역이 매우 중요하고 더 많은 시장이 필요하다는 것을 꿰뚫어 봤던 것임. 

 

- 관세에 대한 매킨리의 관점 변화는 1890년 하원 세입위원장 시절 관세법안 통과를 위해 협상을 이끌던 중에 확연히 드러났음. 당시 공화당은 관세법안을 두고 고율 관세를 주장하는 강경 보호무역주의 진영과 적정한 관세율을 주장하는 온건파 진영으로 분열되어 있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제임스 블레인 당시 국무장관은 무역 상대국과 협상을 통해 서로 관세를 인하한다는 상호주의 원칙을 지지해달라고 촉구했음. 결국 이 호소가 어느 정도 받아들여져 최종 관세법안에는 관세율 인상 조항과 함께 다소 희석되긴 했으나 상호주의 조항이 반영되었으며, 동 관세법을 통해 다른 국가가 미국을 대하는 것처럼 미국도 다른 국가를 대한다는 상호주의 원칙이 확립되었음. 

 

- 이후 1897년 대통령에 당선된 매킨리는 상호주의 원칙을 다시 전면에 내세웠음. 그는 취임 직후 특별의회를 소집해, 무역 상대국과의 협상을 통해 양국 간 상호 관세를 최대 20%까지 인하할 수 있는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하는 내용 등이 담긴 온건한 관세 조치를 승인하도록 했으며, 미국 최초의 무역 대표를 임명해 영국, 프랑스, 아르헨티나 등 주요 무역 상대국과 관세 인하 협상을 실시하도록 해 합의에 도달했으나, 강경 보호무역주의자들이 장악한 상원에 막혀 조약이 부결되었음. 그는 1900년 재선에 성공한 이후에도 상호주의의 미덕을 설파했으며, 1901년 9월 암살로 사망하기 전 마지막 연설에서도 상호 관세인하 협상의 중요성을 역설했음.  

 

- 만일 매킨리 대통령이 그때 살아남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는 알 수 없음. 허나, 무역상대국과의 상호 저율 관세가 미국의 번영에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했다는 것만은 분명하며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임. 매킨리의 열혈 팬을 자처하는 트럼프 대통령도 하루 빨리 이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임. 

 

출처: 월스트리트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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