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중국의 유인책으로 미 동맹이 흔들리지 않는 이유(웬란 장 앨버타대 중국 연구소 창립 소장)
O 미국의 동맹국들은 미국의 통상 압박과 중국의 경제적 유인에도 불구하고 미국과의 관계를 이탈하기 어려운데, 이는 공유된 정체성, 안보 통합, 문화적 유대가 이들을 미국의 전략적 구조에 견고히 묶어 두고 있기 때문임
- 미국 정부가 EU, 일본, 한국, 캐나다, 호주 등 가장 가까운 동맹국들을 상대로 벌이는 무역전쟁으로 인해 지정학적 혼란의 파장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 정부는 무역구도의 재편이 임박했음을 확신했을 수도 있음. 이 절호의 기회를 포착하려는 듯, 중국은 관세 분쟁 속에서 유인책을 제시하며 실용적 협력을 촉구하고 있음.
- 중국은 미국이 수립했던 세계무역기구(WTO) 중심의 무역규범과 전후 자유주의 질서를 스스로 훼손하고 있는 것을 응당 비난하며 미국의 강압에 맞선 집단 행동을 도발하고 있음. 그러나 그동안 EU의 무역보복 위협 및 일본의 수사적 비난이 허사로 돌아가는 등 가시적인 좌절을 지켜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동맹국도 실제로 이탈하거나 중국의 궤도에 근접하지 않았음.
- 이러한 저항은 일시적인 기회주의가 아니라 확고한 닻을 반영함. 수 세기 동안 공유된 정체성, 안보 통합, 문화적 충성심을 바탕으로 미 동맹국들은 미국의 전략적 구도에 비가역적으로 묶여있음.
- 우선, 중국의 구애 작전은 헛수고로 드러남. 동맹국들이 미국의 철강 및 농산물 관세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비난했지만, 중국의 상호 이익 약속에 대해서는 냉철하고 신중하게 대응했음. 미국의 다자간 무역 규범 위반을 한탄하면서도 중국의 공동 방어 호소를 거부한 것은 명백한 위선임. 미국의 압박에 저항하는 ‘방패’로 포장된 중국의 유인 전략은 아무런 정치적 연대도 확보하지 못함. 그 이유는 경제적 실용주의 노선과의 대척점에 ‘국가 안보’라는 기본 가치가 부동의 우선순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임.
- EU-중국 무역 규모가 약 1조 달러에 육박하고 독일 정부가 중국과의 기후 협상을 중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맹국들은 본능적으로 미국과의 정보 공유 체제와 방위 공약을 보호하고 있음. 이들의 불만은 미국의 자제를 촉구하는 호소에 불을 지피기만 할 뿐, 중국 주도의 대결 지원으로는 결코 발전하지 않음. 중국 정부의 세계적 야망과 지정학적 현실 사이의 간극은 메워질 수 없는 상태로 남아 있음.
- 일본과 한국에게 미국과의 동맹은 주권 그 자체를 의미함. 미국의 안보 동맹이라는 ‘용광로’ 속에서 구축된 전후 재건 과정 속에서 세대를 관통하는 결속이 형성됨. 일본과 한국의 정계 핵심에는 미국에서 교육받은 지도자들이 포진하고 있으며, 미국과의 통합 미사일 방어 시스템 내에서 하나의 지휘 체계로 묶여 있고, 미국이 설계한 거버넌스 구조가 사회 계약의 기본 토대로 구축되어 있음. 이들에게 중국의 부상은 고대 악몽의 재현, 즉, 대국의 ‘숨 막히는 포옹’ 속에서 조공을 바치던 고대 중국의 속국 시절로의 후퇴를 의미하는 것임.
- 반도체가 미중 간 전쟁터가 되었을 때, 한국의 반도체 기업들은 디커플링 정책에 반대하는 로비를 벌이면서도 미국과의 공동 연구개발에 위험을 무릅쓴 승부수를 걸었음. 일본에게 오키나와 기지 논란에도 불구하고 미국과의 동맹은 전략적으로 필요불가결함. 이 전략적 동맹 유지를 위해 미국에 지불해야 할 비용 따위 중국의 패권 장악이라는 망령 앞에서는 사소한 것임.
- 이러한 충성심은 정보기관의 보루 안에서 더욱 굳건해짐.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는 미국,영국과 함께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연합군의 암호 해독을 통해 탄생한 ‘파이브아이즈(Five Eyes)’라는 5개국간 상호첩보동맹에 속해 있으면서 미국과 전략적 DNA를 공유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음. 이 동맹은 사이버 위협, 테러 음모, 군부대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공유함으로써 경제적 이해관계를 초월하는 상호 신뢰를 공고히 하고 있음.
- 이런 동맹 관계를 중국과의 무역을 위해 포기하는 것은 수십 년간 구축해온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을 와해시킬 위험을 초래할 수 있음. 호주는 중국이 철광석 수출을 하룻밤 사이에 마비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화웨이의 5G 이동통신 제품의 호주 내 판매를 금지했음. 5개국 첩보동맹국의 충성심은 앵글로색슨 문명의 유대감을 반영하기 때문임. 중국과의 리튬 협정으로는 결코 범접할 수 없는 결속 관계이며, 거기서 이탈한다는 것은 전략적 자살을 의미함.
- 경제적 헤징(hedging) 전략은 가능하지만 동맹의 경계를 넘지는 않음.독일 자동차 제조사들은 미국의 기술 규제에 반대 로비를 펼쳤고, 호주 대학들은 (중국 문화 전파의 첨병인) 공자학원의 교육프로그램을 유치했으며, 일본은 중국 공장을 통해 반도체 수출을 유도하는 등 동맹국들의 행보는 신중했음.
- 미국 관세에 대한 중국의 WTO 상소에 동참하고,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에 조용히 투자해 경제적 이득을 거둘 수도 있을 것임. 그러나 중국 정부가 미국의 조치를 두고 무역 원칙 준수 의지 여부를 가늠하는 시험대에 올리자, 동맹국들은 이에 반발하며 안보 동맹 관리를 우선시함.
- 중국이 호주산 석탄을 금수조치하거나 EU 의원들을 제재했을 때, 호주는 미 해군 증원을 요청했고, 브뤼셀은 EU-중국 투자 협정을 차단하겠다고 발표함. 헤지 전략은 무역 위험으로부터 보호막을 칠 뿐, 미국에 대항하는 반미동맹으로 변질되지는 않음. 중국과의 무역으로 번영할 수 있지만, 미국의 동맹하면 생존이 보장됨. 어렵지 않은 계산임.
- 이처럼 공고한 사슬은 끊어지지 않고 유지될 것인데, 여기에 심대한 아이러니가 있음. 동맹국들은 미국의 약탈적 행위를 규탄하면서도 이를 방조하고, 중국에 대해서는 ‘규칙 기반 질서’를 운운하면서도 미국의 위법 행태는 묵인함. 관세 파동으로 미국 경제가 불확실성을 겪고 있고, 성장하고 있는 중국 시장이 클린테크 공급망을 장악하고 있는 가운데, 친미동맹은 여전히 비대칭적 우위를 유지하고 있음.
- 궁극적으로 위선은 악덕이 미덕에 바치는 찬사인데, 미 동맹국들은 기꺼이 그 위선 가득한 찬사를 미국에 바치고 있음.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 서서 미국이 어길 때는 봐주던 원칙을 중국은 어기면 안된다고 훈계하고 있음. 이는 모순이 아니라 전략임.
- 무역으로 인한 고충은 피와 신념을 바탕으로 하는 동맹 앞에서는 무력함. 중국은 막대한 자본으로 항구와 특허를 살 수 있을지 몰라도, 파이브아이즈 첩보망 속에서 암약하는 요원들 또는 합동 비행훈련에 나서는 F-35 전투기 조종사들의 믿음까지 돈으로 살 수는 없을 것임. 이러한 무형의 자산을 완전히 확보하기 전까지는, 중국의 유인 전략은 난공불락의 요새 위 허공에서 흩어지는 메아리가 될 것임.
출처 :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