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징후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시작된 중동 전쟁은 장기화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 장관은 전쟁이 몇 주 안에 끝날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전쟁 당사국인 이란을 포함해 중동 전체의 분위기는 장기전을 향하고 있다.
 ▲이란 새 최고지도자로 선출된 모즈타바 하메네이[AFP=연합뉴스] |
●이란, 강경파 새 지도자 승계 후 '항전 의지'
전쟁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첫 번째 신호는 이란의 강력한 '항전 의지'다.
8일(현지시간) 이란은 모즈타바 하메네이의 이란 최고지도자 승계를 발표했다.
이란의 새 최고지도자는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의 차남이자 트럼프 대통령이 거듭 '불가' 메시지를 냈던 이란 내 대표적 강경파 인물이다.
이란은 다시 한 번 이번 전쟁에 대해 강경 입장을 대내외에 선포하며 '항전 의지'를 다지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에 대해 대이란 공세 수위를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알리 하메네이보다 온건한 성향의 인사가 이란에서 친미 정부를 이끄는 '베네수엘라 모델'을 구상했던 미국으로선 예상 밖 상황에 몰린 셈이다.
이란의 후계 구도에 자신이 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 트럼프 대통령은 "하메네이의 아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Khamenei's son is unacceptable to me)"고 강한 어조로 거부감을 드러낸 바 있다.
이란 최고지도자의 부자 승계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그간의 발언으로 미뤄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에 대한 공세 고삐를 더욱 조일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개 발언과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이란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이룰 때까지 시간적 제한을 두지 않고, 무력 사용의 여러 가지 옵션을 테이블에 올려둔 채로 이란에 대한 군사작전을 이어가겠다고 공언해 왔다.
특히 개전 직후 알리 하메네이의 거처를 급습해 그를 제거했던 '참수 작전'이 모즈타바를 겨냥해서도 재개될지에 이목이 쏠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일 이란에서 "지도자가 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사람은 결국 죽음을 맞는다"고 발언한 데 이어 이날 ABC 방송 인터뷰를 통해 "우리의 승인을 받지 않으면 그(이란의 새 최고지도자)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란도 폭격이나 특수부대 투입을 예견하고 대비할 것이므로 모즈타바 제거를 위한 군사작전이 전개될지, 감행되더라도 성공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미, 사우디 주재 외교관·민간인에 철수 명령
대체로 미군이 작전을 펼치는 지역에서 전쟁이나 폭격 같은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기 직전에 여러 징후들이 보이는데 그 중 가장 뚜렷한 징후가 해당 지역에서 미국 외교관과 민간인의 철수다.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는 이날 사우디아라비아에 주재 중인 외교관들에게 철수령을 내렸다.
이란 전쟁이 발발한 이후 미 국무부가 사우디에서 출국 명령을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중동 상황이 격화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철수령은 최근 사우디 주재 미국 대사관이 이란의 공습을 받는 등 피해가 커지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되지만, 전쟁 장기화의 신호로도 보인다.
미국은 이란 전쟁 발발 이후 중동에 체류하는 자국민들에게 대피령을 확대하고 있다.
앞서 미 국무부는 지난 2일 이란, 바레인, 쿠웨이트, 이집트, 레바논, 오만,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이라크, 카타르, 이스라엘과 서안지구·가자지구, 요르단, 예멘 등 14곳에 여행경보를 적용했다.
3일에는 요르단, 바레인, 이라크에 체류 중인 비필수 정부 인력 및 가족에게 의무 출국 명령을 내렸다.
쿠웨이트와 요르단 주재 미국 대사관 등은 모든 영사 업무를 중단하고 자국민들에게 출국을 요청하고 있다.
●이란 전쟁에서 '중동 내전'으로 확전·격화
중동전쟁 장기화의 또 다른 징후는 이 전쟁이 미국미스라엘 대 이란의 전쟁에서 이란 대 걸프국가의 전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쟁이 10일째 이어지며 중동 내 석유 저장고와 담수화 시설, 도심 건물까지 겨냥하는 난타전으로 격화하고 있다.
이번 전쟁이 복잡해지면서 쉽게 끝나기 어려운 상황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외신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8일 밤 이란 수도 테헤란 등에 있는 군사 목표물을 겨냥해 '대규모 공습'을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이날 이란 수도 테헤란의 하늘은 검은 연기와 유독가스로 뒤덮였다.
일부 지역에서는 검은색 '기름비'가 내렸다. 이스라엘과 미국이 전날 밤부터 테헤란 북서부 주요 연료보급 기지인 샤흐런 석유저장소와 남부 정유단지 레이 지역의 연료 저장고, 서쪽 외곽 카라지 등을 집중적으로 포격한 여파다.
이란은 "민간인을 상대로 한 사실상의 화학전으로 전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면서 중동 전역의 에너지 기반 시설에 대한 보복 공격을 언급해 긴장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이미 이란의 반격으로 전쟁은 인접 걸프국으로 빠르게 확산 중이다.
이란은 이날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등을 향해 드론과 탄도미사일 공격을 감행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프린스 술탄 공군기지 인근에 위치한 알카르지 지역에 군용 포탄이 떨어져 주민 2명이 사망하고 12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전쟁 발발 이후 사우디에서 사망자가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쿠웨이트에서는 정부 청사가 화염에 휩싸였고 국경 경비병 2명이 사망했으며, UAE는 자국으로 날아든 미사일 16기와 드론 113기를 요격했다고 밝혔다.
바레인은 이란 드론이 해수 담수화 시설을 타격해 일부 설비가 파손됐다고 밝혔다. 담수 시설까지 공격 대상에 포함되면서 식수를 담수 시설에 의존하고 있는 걸프 지역의 위기감은 더욱 높아진 상태다.
걸프 국가들은 군사적 보복 가능성을 경고했다.
아랍에미리트 외무부는 분쟁 악화를 원하지 않지만 주권 보호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밝혔고, 사우디 당국자들도 외신에 본토와 에너지 시설을 겨냥한 공격이 이어질 경우 보복에 나설 수 있다고 이란에 경고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란은 피격 속에서도 강력한 반미, 반이스라엘 성향을 지닌 인사를 새 수뇌로 확정해 항전 의지를 재확인했다.
●트럼프, 중동전쟁 종식 시점 "네타냐후와 공동 결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 전쟁을 언제 끝낼지에 대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함께 "공동으로" 결정할 것이라는 입장을 냈다.
이스라엘 영자지 더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8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이 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의 전쟁이 종료되는 시점을 그가 단독으로 결정할 것인지 네타냐후 총리도 발언권을 가질 것인지 묻는 질문에 "공동으로… 어느 정도는. 우리는 얘기를 하고 있다. 적절한 시점에 내가 결정을 내리겠지만, 모든 것이 고려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 발언을 '이란 전쟁 종결 시점 결정에 네타냐후가 발언권을 가지겠지만 최종 결정권은 트럼프가 가질 것'이라는 취지로 풀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공격을 중단키로 결정한 후에도 이스라엘이 이란 상대 전쟁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냐는 질문에 직접 답하지 않고 "그럴 필요가 있을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이 얼마나 계속될지에 대해 구체적 일정을 밝히는 것을 꺼려왔으나, 이란의 새 최고지도자가 선출되기 전인 지난 6일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미국이 이번 전쟁의 지속 기간을 4∼6주로 예상한다고 전한 바 있다.
[한국무역신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