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 일본을 바꿀 수 있을까
총재선거 승리한 다카이치, 곧바로 ‘뒷돈·통일교’ 관계자에 논공행상 들어가
#변해라_자민당! 해시태그 무색… 논란에도 “인사에 영향 없다”는 다카이치
2025년의 일본 자민당 총재선거는 사실상 차기 일본 총리를 정하는 선거로 알려졌다. 자민당은 선거에서 ‘#변해라_자민당’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워 기존 구태정치를 바꾸겠다고 선전했다.
결과는 다카이치 사나에 후보가 당내 파벌을 거느린 아소 다로 전 총리를 등에 업고 승리했다. 다카이치 신임 자민당 총재는 10월 15일 소집될 임시국회에서 제104대 총리로 지명될 예정으로, 일본에서 사상 첫 여성 총리가 탄생할 전망이다.
그러나 새로 탄생할 다카이치 정권에 대한 우려와 의구심은 국내외적으로 만연해 있다. 우선 자민당 내에서 가장 극우에 가까운 다카이치가 일본의 외교를 잘 이끌어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다. 또한, 구태 파벌의 도움을 받아 당선된 다카이치가 과연 정말로 일본을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이들이 의문을 가지고 있다.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될 것이라는 부분에서의 기대도 희박하다. 이와모토 미사코 미에대 명예교수는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위기일수록 여성이 리더로 세워지는 ‘유리절벽’ 현상이 이번에도 나타났다”며 “이는 자민당이 구조적 위기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마이니치신문 또한 여성 총리로서 다카이치가 “쇄신의 상징이 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며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 도입에 반대해왔고 다양성 존중과는 거리가 멀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대중의 반응이 가장 싸늘한 부분은 구 아베파에서 뒷돈(裏金)을 받아먹었다는 의혹과 통일교 관련 의혹 등이 제대로 해명되지 않은 인물들을 요직에 앉히고 있다는 점이다. 자민당 총재선거가 다시 열리게 된 이유가 당내 뒷돈 의혹으로 인한 선거 패배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아이러니다.

[도쿄=AP/뉴시스] 지난 2014년 10월 22일 아베 신조 당시 총리(왼쪽)와 다카이치 사나에 당시 총무장관. 아베 전 총리는 2021년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다카이치를 지지한 바 있어 다카이치는 구 아베 파벌로 여겨진다.
●“마치 제2의 아소 정권 같다”
10월 7일 일본 소셜미디어 트렌드를 장악한 키워드 중 하나는 ‘#제2차_아소_정권’이었다. 유권자들의 냉소가 “다카이치 정권이라기보다는 제2차 아소 정권이나 제3차 아베 정권”이라는 평가로 나타났다.
이날 자민당은 총재선거를 마친 후 새 지도부 인선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인사 전반에 결선투표에서 다카이치 총재를 지원한 아소 다로 전 총리의 영향력이 강하게 반영된 것이 드러나면서, 마치 제2차 아소 정권을 방불케 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지난 자민당 총재선거의 캐치프레이즈였던 ‘#변해라_자민당’ 해시태그를 무색하게 만드는 조치라는 것이다.
자민당은 이날 오전 도쿄 자민당 본부에서 임시 총무회를 열고 새 집행부 구성을 공식 결정했다. 당 핵심 보직인 간사장에는 아소 전 총리 처남인 스즈키 슌이치 총무회장, 부총재에는 아소 다로 전 총리가 각각 임명됐다. 정무조사회장에는 고바야시 타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 총무회장에는 아리무라 하루코 의원이 기용됐다.
스즈키 간사장과 아리무라 총무회장은 아소파 소속으로, 당내 지도부인 총재·간사장·정조회장·총무회장·선거대책위원장의 5자리 중 3개 자리를 아소파가 차지하게 됐다. 이에 대해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총재선거 결선투표에서 다카이치 후보를 지원한 아소의 영향력이 뚜렷하게 반영된 인사로 평가된다고 해설했다.
특히 이번 인선에서는 자민당 비자금 스캔들에 연루됐던 의원들이 배제되지 않았다는 점이 비판을 불러왔다. 다카이치 총재는 지난 4일 기자회견에서 구 아베파 정치인들의 뒷돈 논란에 관해 “인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정치분석가인 시라토리 히로시 호세이대 교수는 “다카이치는 당내기반이 약한 자신을 지원해준 아소파, 구 모테기파, 구 아베파 등을 중심으로 당내 지도부 인사를 하고 있어, 20세기의 파벌항쟁 논공행상을 보는 듯하다”며 “역시나 ‘파벌 부활의 총재선거’라는 측면이 이처럼 인사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날인 6일 아사히TV 모닝쇼에 출연한 정치평론가 다사키 지로는 “선거가 끝나면 승자 측이 우대받는 경향이 있다. 이번 승자가 누구냐 하면 아소파이며, 구 아베파”라며 “이런 그룹의 사람들이 (인사) 명단에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가 언급한 대표적인 인물은 자민당의 하기우다 코이치 의원이다. 그는 통일교 관련 의혹에도 얽혀 있으며, 지난 선거에서는 구 아베 파벌에 속해 뒷돈 의혹에 연루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선된 바 있다. 구 아베파 간부인 그는 이번 자민당 인사에서 간사장 대행으로 기용됐다.
●콘크리트 우파에 러브콜 지속할까
자민당이 이처럼 말로만 변혁을 외치고, 오히려 구태 정치인 중심으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애초에 진짜로 변화를 모색하려던 것이 아니라 단지 집토끼인 ‘콘크리트 우익’에 소구하기 위해서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자민당이 다수당 지위를 잃은 것은 정치자금 뒷돈 논란과 통일교 관련 의혹도 있지만, 당내에서는 콘크리트 우파가 신생 극우정당으로 떠나간 부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신생 극우정당으로는 다마키 유이치로가 이끄는 국민민주당과 가미야 소헤이가 이끄는 참정당이 꼽힌다. 이들 두 신생정당은 2022년 선거에서의 득표는 500만 표 미만에 그쳤지만, 2025년 선거에서는 1500만 표 이상을 모으며 급성장했다. 같은 기간 자민당의 비례 득표율은 29.8% 감소했다.
극우 성향의 참정당은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의 권리를 제한하고 ‘재패니즈 퍼스트’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하며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추세로 인해 자민당에서도 당내에서 극우 포지션에 속한 다카이치를 차기 총리로 밀며 콘크리트 우파의 지지를 돌려놓으려고 했다는 분석이다.
다만 자민당의 ‘우클릭’에는 명확한 한계 또한 점쳐진다. 극우로 기울지 않으면 콘크리트 보수층이 떠나가지만, 극우로 기울게 되면 연립여당으로서 연합을 꾸리고 있는 공명당과의 관계가 깨질 수 있다는 진퇴양난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카이치 총재는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스스로 ‘온건 보수’를 표방하며 강경 발언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카이치 총재를 포함한 자민당 새 집행부는 연립여당 공명당과 조기 연립 합의를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공명당과 그 지지 기반인 창가학회 내부에서 연립정권 탈퇴론이 부상하고 있어 협상은 난항이 예상된다.
사이토 데쓰오 공명당 대표는 지난 4일 다카이치 총재와 만나 ▷‘정치 비자금’ 문제 ▷역사 인식 및 야스쿠니 참배 문제 ▷외국인 공생 문제 등 세 가지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다. 현재 자민·공명 양당은 중·참 양원 모두에서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야권이 임시국회 총리 지명 투표를 앞두고 단일 후보를 세울 움직임이 미약해 다카이치 총재가 총리로 지명되더라도 ‘소수 여당’ 체제에서 정권을 운영해야 하는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카이치 총재는 공명당과의 연정을 유지한다는 입장을 확인하면서도, 다른 야당을 연립정권에 참여시키는 데 의욕을 보이고 있다. 다만 과격한 발언으로 혐오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듣고 있는 참정당보다는, 일부 의제에서는 오히려 입헌민주당보다 좌파에 가깝다고 여겨지는 국민당과의 연합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도쿄=AP/뉴시스] 사진은 2025년 일본 집권 자민당 총재가 된 다카이치 사나에가 지난 2023년 8월 15일 2차 세계대전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서 참배한 후 기자들에게 발언하는 모습. 그는 태평양전쟁의 주요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가장 적극적인 자민당 정치인 중 하나였다. 2022년 한 강연에서는 “야스쿠니 참배를 하지 않는 등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니 상대(한국·중국)가 기어오르는 것”이라며 “총리가 돼도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겠다”고 발언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여자 아베’ 다카이치의 한계… 미국 심기는 거스르기 어렵다
대중국 강경 색채에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제한 완화 기대감 옅어져
●총리 되면 곧바로 미일 정상회담
다카이치가 최근 들어 극우 정치색을 자제하고 온건 보수를 표방하고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외교 부문에서의 기대는 크지 않다. 비록 그가 경제안보장관을 지내기는 했으나 대외관계에 있어 강경 발언을 해온 만큼 우려를 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다카이치가 한국과 중국에 대해 매파적인 입장인 만큼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지정학적 입지가 악화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그는 태평양전쟁의 주요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가장 적극적인 자민당 정치인 중 하나였다. 2022년 한 강연에서는 “야스쿠니 참배를 하지 않는 등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니 상대(한국·중국)가 기어오르는 것”이라며 “총리가 돼도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겠다”고 발언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최근 보도에서 다카이치 신임 자민당 총재는 외교 분야에서 정부와 당에서 주요 직책을 경험하지 않았다며, 외교 수완은 미지수라고 평가했다. 대중국 강경파인 다카이치의 집권으로 인해서 지난 6월 중국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로 중단했던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재개하기로 한 결정이 불투명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내놓았다.
다만 다카이치가 한국과는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기조를 보인 점에도 주목했다. 그는 최근 중국, 러시아, 북한이 관계를 강화하는 점을 들며 “한국과는 협력하면서 대응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아울러 마이니치는 “미국 우선주의를 확고히 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개인적인 신뢰를 쌓아, 미일 동맹 억지력 강화를 확인하는 게 제일 관문”이라며 현재로서 가장 중요한 일본의 대외 과제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라고 짚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말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길에 27일 일본을 방문할 계획이다. 다카이치가 15일 총리로 당선된다면, 취임한 지 보름도 되지 않아 미일 정상회담에 나서게 되는 셈이다.
또 다른 일본의 유력 언론인 요미우리신문도 다카이치 총재는 당내에서 보수파로 알려져 있다며, 역사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이나 중국과 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해선 균형 잡힌 정치 자세를 취할 수 있는지가 과제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회담 관련 정상 간 직접 협상을 선호하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 구축이 급선무라며, 방위비 증액이 요구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다카이치는 한국에서 ‘여자 아베’로 불릴 정도로 자민당 내에서 극우 포지션을 점하고 있다. 아베 신조 전 총리가 2021년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그를 지지한 바도 있다. 특히 다카이치는 ‘재패니즈 퍼스트’를 내건 극우 참정당과의 협력에도 긍정적인 입장을 밝힌 만큼, 외교 정책 부분에서 강경한 기조를 내세울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관측이다.
●미국 눈치에 야스쿠니 참배 거르기도
한편으로는 다카이치가 국가를 대표하는 자리에 올라선 만큼 이전보다는 언행이 신중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로 다카이치는 총재선거에서 승리하자, 10월 17~19일 야스쿠니신사에서 집행되는 추계례대제 행사에 참배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복수의 관계자가 현지 언론을 통해 밝혔다.
자민당과 연립 정부를 형성하고 있는 공명당의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최근 다카이치와의 회담에서 중국·러시아·북한이 연대를 강화하는 등 일본을 둘러싼 안보환경이 어려워지고 있는 가운데 “야스쿠니 참배가 외교문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전했다고 교도통신에 밝혔다.
다카이치 측에서도 10월 말 APEC 정상회담에 참여해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기회를 모색할 전망인 가운데 “정상회담 전에 불씨를 지피는 일은 피해야 할 것”이라며 사이토 대표의 견해에 의견을 함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일본의 정치 전문가들은 외교적으로 큰 이벤트를 앞두고 국제적으로 문제 소지를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미마키 세이코 도시샤대학 교수는 “10월 말 트럼프 미 대통령 방일이라는 커다란 외교 이벤트를 앞두고 일본이 한국이나 중국과의 역사문제를 둘러싸고 분란을 일으켜 관계를 싸늘하게 만들기를 바라지 않는 미국의 의향을 충분히 배려한 판단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매파이자 보수 내셔널리스트로 알려진 다카이치가 국가수반으로서 움직이게 된 지금, 자신의 오랜 신념에 관한 것일지라도 국제정세를 살펴 유연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현실주의자임을 나타내는 사례이기도 하며, 미국에서도 호의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미국 ‘디플로맷’의 다카하시 코스케 도쿄특파원은 “2013년 12월 당시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했을 때 중국과 한국이 비난할 뿐만 아니라 미국 오바마 정권에서도 이례적으로 ‘실망’의 성명을 내면서 미일관계가 1년간 정도 삐걱거렸다”며 “아베가 총리 재임 중 야스쿠니를 참배한 것은 그것이 마지막이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트럼프 정권도 한미일·한일 안보협력 유지 강화를 꾀하고 있어, 다카이치도 야스쿠니 참배에는 신중한 자세를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며 “설령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지 않더라도, 다카이치를 지지하는 콘크리트 보수층은 이미 그의 스탠스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설령 다카이치가 ‘여자 아베’나 ‘제2의 아소’로 불린다고 해도, 과거에 아베 전 총리나 아소 전 총리가 그러했듯이 한 국가의 정상으로서는 과격한 행보에 제한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국무역신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