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직구도 덮친 관세폭풍… ‘미소기준’이 뭐길래
“중소기업 피해 우려” 지적에도 소액직구에 관세 부과
EU에 비해서도 막대한 액수… 각국서 대미국 배송 중단

[사진=뉴시스] 지난해 해외 소비자가 오픈마켓 등을 통해 구매한 K-뷰티 상품 규모가 10억 달러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향료·화장품 해외 역직구 금액은 9억7300만 달러로 집계돼 2019년 이후 5년 만에 17배 넘게 확대된 것으로 추산됐다. 사진은 지난 5월 서울 중구 명동을 찾은 외국인 여행객들이 화장품매장 앞을 지나는 모습.
미국에서 국제 우편 네트워크를 통해 수입되는 800달러 미만의 소액 해외직구품에 대한 면세제도가 8월 29일부터 폐지된 가운데 글로벌 전자상거래 무역현장에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소액 해외직구 수입 면세제도는 ‘미소기준(de minimis) 원칙’이라고도 하는데, ‘지나치게 사소한 문제에는 법이 개입하지 않는다(de minimis non curat lex)’는 라틴어 법률용어에서 유래했다. 그러나 소액 직구 제품의 수입 규모가 더는 사소하지 않게 되면서 개정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미 세관국경보호국은 2024년 회계연도에만 13억6000만 개 이상의 패키지가 이를 통해 수입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는 10년 전보다 약 10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이는 2016년부터 면세 한도가 200달러에서 800달러로 상향 조정되면서 혜택 품목이 늘어난 까닭으로 분석된다.
미소기준 원칙은 오랫동안 미국 내 물가 안정과 무역 장려에 기여해온 정책이었으나 2020년대 들어 중국발 글로벌 전자상거래 업체들이 시장을 지배하면서 시험대에 올랐다. 여기에 올해 집권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이 규정이 미국으로의 마약 유입에 기여한다고 비난하며 폐지를 선언했다.
중국은 2023년 기준으로 이 제도를 통한 미국 내 수입량의 약 60%를 차지했다. 중국발을 제외하고도 멕시코나 브라질과 같은 환적지를 애용하는 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 쉬인(Shein)과 테무(Temu) 두 업체의 비중은 미국 내 소액직구 면세 수입량의 약 30%에 달하는 것으로 미 하원 중국특위는 추산하고 있다.
이에 미국 연방의회는 2020년대 들어 이 제도를 개정하기 위한 논의를 활발히 진행해왔다. 미국에서는 미소기준 면세한도를 제한하는 데에 초당적인 지지가 있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마약과 위험 제품이 국내로 유입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일부 미국 기업들도 이 제도가 외국 제조업체들에 불공정한 이점을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처음에는 무관세 혜택 한도를 줄이고 중국과 러시아 등 적성국에 대한 혜택을 폐지하는 등 개혁에 방점을 두고 추진해왔던 것이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함께 폐지로 기울었다.
지난 5월 이른바 ‘펜타닐 관세’가 캐나다·멕시코·중국에 부과되면서 이들 국가에 대한 소액직구 면세 혜택 또한 막을 내렸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7월 30일 미소기준 규정의 전면 폐지 행정명령을 내걸면서 8월 29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이에 따르면 국제 우편을 통해 수입되는 상품은 이제 제품 원산지에 따라 적용되는 국가별 상호관세율과 동일한 관세가 부과된다. 다만 업체로부터 구매하는 것이 아닌 개인 간의 해외배송은 100달러 이내 범위에서 여전히 허용된다.
아울러 미소기준 면세 폐지 이후 6개월간은 운송업체가 정액 관세의 적용 여부를 선택할 수 있다. 정액 관세는 상호관세율이 16% 미만인 국가는 품목당 80달러, 16~25%인 국가는 품목당 160달러, 25% 이상인 국가는 품목당 200달러로 규정돼 있다.
유럽연합(EU)도 중국발 저가 전자상거래 상품의 범람을 막기 위해 지난 5월 150유로 미만 패키지에 적용되던 면세 혜택을 폐지했으나 이로 인해 부과되는 관세는 건당 2유로에 불과해 미국의 조치보다는 부담이 훨씬 덜한 상황이다. 자유주의 싱크탱크 케이토연구소 등은 미국의 미소기준 소액면세제도 폐지로 중소기업들의 피해가 우려된다고 짚었다.
아울러 미소기준 규정 폐지는 인플레이션 충격뿐만이 아니라 통관 및 배송 기간 증가로도 공급망에 부담을 끼칠 전망이다. 그간 미소기준 적용 제품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관세 정산이나 세관 검사의 장애물 없이 국경을 오갔지만, 이제는 그러한 혜택도 면세와 함께 폐지됐다.
●섬유·의류 직격타… K-뷰티 영향은?
미국의 미소기준 규정 폐지에 따라 각국 우체국 및 국제 특송업체들은 8월 하순부터 미국행 배송을 일시 중단했다. 아울러 관세 부담이 커지면서 일부 기업들은 소비자 가격을 올리거나 미국 내 판매를 전면 중단하는 방식으로 대응에 나섰다.
영국 언론 BBC는 8월 22일 전 세계 우편 서비스 업체들이 이달 말부터 부과되는 새로운 수입세를 둘러싼 혼란으로 미국으로의 일부 배송을 중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 로얄 메일과 독일 특송업체 DHL을 포함한 우편 서비스들은 새 규정을 다룰 적절한 시스템이 마련될 때까지 배송을 일시 중단할 예정이다.
미국 언론 CNN 또한 유럽과 아시아 각국 우체국들이 이미 미국행 배송을 중단하기 시작했다고 24일 보도했다.
DHL은 이날을 마지막으로 미국행 배송 접수를 종료하고, 오스트리아 포스트도 다음 날까지만 접수받고 이후 배송을 중단하기로 했다. 싱가포르 싱포스트와 인도 우정청 역시 일부 미국행 배송을 일시 중단한다고 밝혔다. 미국에 접한 멕시코도 27일 미국행 배송 중단을 알려왔다.
오스트리아 포스트는 “현재 앞으로 필요한 통관 절차에 대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다”며 “이러한 규제 강화는 미국으로 상품을 배송할 때 전 세계 모든 우편 회사에 큰 도전 과제를 제기한다”고 꼬집었다.
CNN은 “이번 변화는 아마존 하울, 틱톡샵과 같은 할인 판매업체뿐만 아니라 엣시(Etsy), 쇼피파이 같은 글로벌 온라인 마켓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DHL 그룹은 성명에서 “특히 향후 관세가 어떻게, 누구에 의해 징수될지, 어떤 추가 데이터가 필요할지, 미국 세관 및 국경 보호국에 데이터를 전송하는 방식에 대해 주요 질문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며 미국으로의 배송 중단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는 예상하지 못하겠지만 “가능한 한 빨리 미국으로 우편물 배송을 재개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글로벌 직구 플랫폼인 엣시는 판매자들에게 배송 운송장을 발급받을 때 관세와 세금을 미리 내도록 권장했다. 이렇게 하면 소비자는 상품을 주문할 때 이미 관세가 포함된 최종 가격을 한 번에 확인하고 결제할 수 있다. 그러나 일부 엣시 판매자들은 미국 고객 대상 판매를 아예 중단할 방침이다.
일부 기업들은 추가 비용을 소비자 가격에 전가하거나, 아예 미국 내 판매를 중단하고 있다. 특히 이번 조치로 가장 큰 충격이 예상되는 품목은 의류와 신발이 꼽히고 있다. 미국 의류 및 신발 협회의 추정에 따르면 미국에서 판매되는 의류의 약 97%가 해외에서 생산된다.
실제로 영국의 뜨개질·공예용품 업체 울웨어하우스는 미국 수출 시 평균 50%의 추가 비용이 예상된다며, 고객들이 이를 수용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21일부터 미국행 배송을 중단했다. 영국 주얼리 제작업체 셰드 메이드는 미국 고객이 전체 주문의 50%를 차지하지만, 29일부터 미국 판매를 중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공급망 플랫폼인 쉽밥의 최고 마케팅 책임자 케이시 암스트롱은 8월 29일 이후 모든 해외직구 수입품에 ‘미소기준’ 규정 폐지로 인한 관세 납세분이 표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일반적으로 섬유는 가장 높은 관세율이 부과되는 경우가 많으며, 미소기준 면세조항이 크게 활용되고 있었다”며 섬유 제품들로 분류되는 배낭·핸드백·파우치 등 가방류도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저가 가전제품이나 가정용 인테리어 제품 등 대량 염가 판매되는 제품들 또한 “퍼센티지 기준으로 1~2달러만 지출하더라도 다른 제품보다 관세율이 높다”며 미소기준 면세 종료로 “꽤나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그는 타격받을 제품으로 반려동물용품, 전자제품, 크리스마스 장식 등 계절성 품목을 꼽혔다. 여기에 뷰티코스메틱 제품, 특히 최근 미국에서 인기를 끄는 한국 화장품도 언급했다.
미국으로의 K-뷰티 역직구 수출은 우리 중소기업의 역직구 수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우리 업계가 직접적인 영향 아래에 놓이게 된다. 지난해 K-뷰티 역직구는 10억 달러에 근접하는 규모로 성장했다.
당장 한국 화장품 브랜드 올리브영이 소액면세 종료 이후인 27일부터 모든 주문에 15% 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혔으며, 세금은 결제 시 표기되기에 배송 시 추가 요금이 부과되지는 않는다는 안내도 하고 있다. 다만, 업계는 다른 나라에 부과되는 관세율도 높은 데다가 K-뷰티의 경쟁력이 우세한 만큼 큰 타격을 입지는 않으리라고 낙관 중이다.
[한국무역신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