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열도 뒤흔든 쌀값 파동,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선거 앞두고 국가적 의제로 부상… 심할 때는 전년 동월 가격의 2배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신임 농림수산장관은 폭등한 쌀값을 끌어내리기 위해 수입 등 “모든 선택지를 배제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이 지난 5월 21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모습.
‘레이와 쌀 소동’으로 불리는 일본 열도의 쌀값 파동이 1년 가까이 접어든 올여름 들어서야 비로소 안정을 찾아가는 추세다. 지난 5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일본 쌀 가격은 6월부터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 정부의 비축미 방출 등 정책이 비로소 효과를 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5월만 해도 일본 총무성이 발표한 쌀값 상승 폭은 전년 동월 대비 101.7%에 달했다. 집계를 시작한 1971년 1월 이래 최고를 기록하며 8개월 연속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쌀 부족 현상이 지난해 8월부터 이어져온 가운데 일본 정부는 제때 대응하지 못해 서민 부담을 키웠다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일본은 쌀 문제에 있어서 매우 보수적인 국가로, 자국산 쌀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데다가 쌀 산업 보호에 대한 의지도 강해 관세도 높다. 일본은 수입 쌀 관세를 종량제식으로 1㎏당 341엔씩 매기고 있는데, 최근 역대급으로 오른 쌀값이 1㎏당 700~800엔대라는 점을 감안해도 상당히 관세율이 높다.
자연히 우리나라가 일본에 쌀을 수출하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그런데 이번에 일본 국내에서 쌀값이 크게 높아진 가운데 가격 경쟁력이 생기면서 실제 수출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올해 들어 우리나라의 대일본 쌀 수출 계약물량만 800t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래 최대 수준이다. 한국에 온 일본 관광객이 바리바리 쌀을 싸가는 모습은 소셜미디어를 타고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일본에서 쌀 부족 현상이 장기화하며 일본 정부도 어쩔 수 없이 쌀 수입을 늘려서라도 쌀값 안정을 우선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에 태국과 베트남 등 동남아의 쌀 수출 강국들도 일본에 단립종 쌀을 수출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 대만의 경우 이번 기회를 틈타 대일본 쌀 수출이 6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쌀 부족을 부른 세 가지 요인
쌀값은 너무 높아서도 안 되고, 너무 낮아서도 안 된다. 너무 높으면 민생고를 초래하고, 너무 낮으면 국내 농업 기반이 타격을 입어 식량 안보 저해로 이어질 수 있다.
국민 식습관이 서구화되고 쌀 소비가 줄어드는 추세인 가운데 쌀의 수요와 공급을 조정하는 것은 정부가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문제가 됐다. 이는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 농림수산성 보고서에 따르면 30년 전 일본의 주식용 쌀 수요는 연간 944만t에 달했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가파르게 감소해 2023년에는 700만t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러한 쌀 수요의 가파른 감소 추세에 맞춰 일본은 지난 몇 년간 재배 면적을 급격하게 줄여나갔다. 그러나 지난해 쌀 수요가 반등하자 이는 쌀 품귀 현상으로 이어지게 됐다. 이것이 지난해부터 이어진 일본 쌀 대란의 첫 번째 요인이다.
두 번째 원인은 기후변화였다. 2023년 일본에서는 기록적인 무더위와 태풍으로 인한 푄 현상 등으로 쌀 작황이 좋지 않았다. 그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의 흉작이었다.
당시 일본 농림수산성은 2023년 수확된 쌀의 작황지수가 기준치를 웃돌아 안심하고 있었으나, 이상 고온의 영향으로 도정 과정에서 손상되는 쌀이 많아 실제 수율은 훨씬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애초에 물량이 부족했던 것이 햅쌀이 나오기 직전이 되자 재고가 바닥을 드러냈다.
일본에서 햅쌀이 풀리는 것은 수확철인 9~10월인데, 2023년까지는 전년도에 풀린 쌀로 인해 공급 부족 문제가 크게 불거지지 않았다. 따라서 일본의 쌀 품귀 현상이 시작된 것은 2024년 여름이었다. 작년 8월이 되어서야 일본 언론들은 ‘쌀이 사라졌다’며 소매 유통점 곳곳에서 쌀 품절 사태를 잇달아 보도했다. 세 번째 원인은 일본 국내 유통업체들의 ‘쌀 사재기’였다. 일본 현지 전문가들이 말하는 도매업체들이 쌀을 사재기하는 요인은 다양하다.
우선 2023년 있었던 ‘눈에 보이지 않는’ 흉작으로 일본 도매업체들의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졌는데, 이것이 사재기의 도화선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의 농정학자인 오오이즈미 카즈누키 미야기대학 명예교수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농림수산성이 발표하는 숫자를 믿을 수 없다는 농정 불신 때문에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독자적으로 쌀을 사재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쌀 품귀 가능성을 여전히 우려하는 가운데 외식업체 등 주요 고객과의 납품 계약을 지키기 위해 평소보다 더 많은 재고를 확보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이를 노리고 일부 유통업체가 시세차익을 크게 늘렸다는 비판도 등장했다.
일본 쌀 유통 전문가인 츠네모토 타이시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투기적인 움직임이 있다”고 주장하며 2024년 주식용 쌀 수확량은 전년보다 늘었는데 집하량은 전년보다 21만t이나 적었다고 지적했다.
쌀 생산지에서 60kg당 2만3000엔대에 집하된 쌀이 소매 사업자와의 현물 거래에서는 4~5만 엔으로 값이 크게 뛰어올랐다는 것이다. 그는 “2024년 6월 시점에 예년에는 1년분이었던 일본전국농업협동조합연합회의 재고 확보량이 14개월분으로 결정돼, 그 단계에서 출하량이 예전보다 약 17% 감소하는 것은 확정돼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무역신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