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희토류 독립’과 한국의 역할
얼마 전 중국의 관영 언론 글로벌타임스는 미국에 대한 희토류 수출규제를 시사하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미 국방산업의 높은 중국 희토류 의존도에 주목해 최근 미국이 발동한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통제에 맞서 중국도 희토류 수출규제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 정부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9월 미 국방부는 최신 전투기 F-35 엔진에 사용된 희토류 합금이 미국산 조달규정을 위반했다며 당초 주문했던 126대의 인수를 중단했다가 중국산 희토류 사용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인수를 재개했는데, 미 국방산업에서 중국산 희토류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F-35의 공급자인 록히드마틴 등은 향후 제작 물량부터는 미국산 희토류 사용을 약속했지만 급격한 공급망 전환이 쉽지 않으리란 전망이 우세합니다.
미국은 이미 1973년 국방 분야에 사용되는 희귀 광물 및 철강 등에 자국산 사용을 의무화하는 규정을 마련했습니다. 일부 예외상황을 제외하고 국방부가 조달하는 모든 특수 금속 및 희귀 광물의 자국산 사용을 의무화한 것인데, 1980년대 중반 이후 희토류 생산 급감으로 국내 확보가 어려워지자 사실상 유명무실해졌습니다.
2021년 미 지질조사국(USGS)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희토류 매장량은 약 1억2000만 메트릭톤으로 추정됩니다. 이 중 중국이 4400만 메트릭톤으로 세계 1위(37%)이고 베트남(18.3%), 러시아(17.5%), 브라질(17.5%)의 순입니다. 미국 내 매장량은 약 180만 메트릭톤으로 세계 매장량의 1.5% 수준입니다.
중국은 2021년 기준 글로벌 생산의 60%, 16만8000메트릭톤을 책임졌습니다. 미국의 생산은 4만3000메트릭 톤으로 세계의 연간 생산량(28만 메트릭톤)의 약 15%를 차지했습니다. 1985년까지만 해도 미국은 세계 최대의 희토류 생산국이었지만 중국의 공격적인 채굴 및 가공 확대로 미국 내 생산은 거의 제로로 떨어졌습니다. 2010~14년의 중국발 희토류 공급 쇼크에 자극받은 미국은 2018년 뒤늦게 국내 생산을 재개했고 지금까지 꾸준히 생산량을 늘리고 있습니다.
미국은 일부 희토류의 경우 정광 형태로 생산해 수출하기도 하지만 소비되는 희토류 금속 및 화합물은 거의 100% 수입하고 있습니다. 2021년 미국의 희토류 금속 및 화합물 수입액은 1억6000만 달러로 전년의 1억900만 달러에서 급증했습니다. 중국산이 전체의 78%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에스토니아(6%), 말레이시아(5%), 일본(4%) 등이었습니다. 일부 전문가는 미국의 중국 의존도가 통계보다 훨씬 클 것으로 보고 있는데, 중국 희토류가 제3국을 거쳐 미국으로 수출되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지난 50여 년 동안 국가전략 차원에서 희토류 산업 관련 연구개발 및 전문 인력 양성에 힘써왔습니다. 1990년대 들어 중국이 희토류 생산량을 크게 늘리자 국제가격이 급락했고 이 결과 미국 등 서방 희토류 기업의 상당수가 폐업하거나 감산에 들어갔습니다. 이후 중국 정부는 ‘중국제조 2025’ 정책에 따라 희토류 산업 육성 전략을 세우고 공급망 통합에 나섰고 결국 세계 희토류 정제 역량의 90%를 책임지며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미국도 희귀 광물의 국내 생산역량 강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미 국방부는 캘리포니아 지역의 희귀 광물 채굴 및 처리 시설 개발을 위해 3500만 달러를 투자했습니다. 또한 올해 3월 발표된 대통령 결정문은 국방생산법에 따라 전략 광물의 국내 채굴, 가공, 재활용 관련 투자계획을 밝히고 있습니다. 2021년에 통과된 인프라 및 고용법에 따라 미 에너지부는 희토류 및 전략 광물의 생산시설 확충 및 기술 투자를 위해 1억4000만 달러의 예산에 대한 세부 계획을 수립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국제 희귀 광물 공급망 안정을 위해 광물안보파트너십(MSP)도 강화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미 국무부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호주, 캐나다, 프랑스, 독일, 일본, 영국 등 10개국과 유럽연합(EU)이 참여하는 MSP를 출범시켰습니다. 참여국들은 MSP를 통해 공급망 내 정부와 민간 투자 협력을 증진하고 높은 수준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준수에 합의했습니다. 미 정부는 동맹국 및 파트너 국가와 함께 해외 프로젝트 개발을 위한 금융 및 투자 지원에도 나서고 있습니다.
미 연방의회도 중국 희토류 의존 종식을 위한 입법을 검토 중입니다. 상원에는 중국산 희토류 사용 감축, 국내 생산 증대, 공급망 혼란 최소화를 위해 ‘필수 에너지·희토류 안보 및 온쇼어링 법안’이 계류 중입니다. 이 법안은 △희토류 전략 비축 제도화 △원산지 공개 의무화 △국방 분야에서 중국산 희토류 사용 금지 △중국의 불공정 무역행위 조사 등을 골자로 합니다.
미국은 특히 희토류 등 희귀 광물의 중국 의존도 축소를 위해 우방국과의 협력에 적극적입니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우선 협력 대상국으로 캐나다, 호주, EU, 일본과 함께 한국을 지정했습니다. 주요 협력 분야는 핵심 광물자원 발굴 및 개발, 프로세싱·리사이클 역량 개발, 공급 혼란 방지 및 리스크 관리, 공동 연구개발 및 제조 육성, 직접 투자 및 채굴권 등 국제 거래정보 공유 등입니다. 이 가운데 호주와는 2021년 핵심 광물 공급망 작업반을 발족하고 정부 간 프로젝트 금융 지원과 채굴, 처리, 생산 등에서 공동 협력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일본과는 경제정책협의위원회를 설치하고 주요 의제로 핵심 광물, 희토류 개발 및 금융 지원 등을 올려놓고 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한 KOTRA 워싱턴 무역관은 “글로벌 희토류 공급망에서 주요 플레이어로서 한국의 위상 제고를 위해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프로젝트 금융, 다운스트림 제조, 광물 연구개발 등에서 국제 수준의 역량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국제 광물 개발 관련 공공-민간 프로젝트에 우리 기업에 대한 참여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특히 베트남, 인도네시아, 몽골 등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금융, 제조 처리 기술, 경험 전수, 친환경 개발 등 다양한 형태의 협력 사업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한국무역신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