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외환조치로 어려움 겪는 우리 기업들
요즘 미얀마 경제는 미얀마중앙은행(CBM)이 4월 3일 달러화 강제 환전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외환 조치를 발표한 이래 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규제 강도가 강력했을 뿐만 아니라 적용대상이나 방법 등 구체적인 시행방안이 발표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새해 물 축제인 ‘띤잔’ 연휴가 끝난 같은 달 20일에 예외 적용대상이 추가 공지됐으며 이후 세부 시행에 관한 훈령이 잇따라 공표되면서 새로운 조치의 방향성이 어느 정도 구체화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일부 훈령은 직전에 발표된 조치를 번복하는 조항을 담고 있는 등 여전히 혼선을 빚고 있습니다. 실제로 CBM이 규제 시행과 안내를 위임한 시중의 공식인증(AD) 라이선스 보유 은행에는 지금도 지침 적용에 관한 문의가 쇄도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외환 조치의 정확한 내용과 우리 기업에 미칠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발표된 내용들을 종합해서 정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외환 조치는 미얀마에 거주하거나 실체를 둔 모든 개인, 기업 및 기관의 달러화 보유 금지를 기본으로 합니다. 우선 미얀마에 연 183일 이상 거주한 사람은 조치가 처음 발표된 4월 3일 이후 송금받은 달러화를 CBM 지정 환율인 달러당 1,850짜트로 환전해야 합니다.
이는 기존 고시 환율인 1,778짜트보다 높지만 실제 시중 거래 환율인 2,050짜트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입니다. 환전 시기나 방법도 개인이 선택할 수 없으며 계좌를 개설해준 주거래은행이 CBM의 지시를 받아 강제로 실시합니다. 미얀마 거주기간이 연 183일 이상이라면 외국인에게도 동일한 조치가 적용됩니다. CBM이 공지한 예외 적용대상이 아니라면 누구도 강제 환전 조치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자국 내 달러화 거래 역시 전면 금지돼 국내 달러화 송금이 중지됐으며 예외 적용대상들마저 달러화 국내 송금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그간 미얀마에서는 기업 간 국내 거래계약을 달러화로 체결하는 관행이 흔했는데, 현지화에 대한 신뢰도가 극히 낮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일부 소액거래에도 달러화가 사용되는 등 통용 화폐의 이원화 현상이 심각했습니다. 그래서인지 현지 금융당국은 달러화 통용 근절 의지를 유독 강하게 내비치고 있습니다.
가장 핵심적인 조치는 달러화의 역외반출 통제입니다. 미얀마 밖으로 나가는 모든 달러화 송금 건이 신설된 외환감독위원회(FESC)의 엄격한 심사를 거치게 된 것입니다. 이에 따라 외국인 투자기업의 자본금 회수나 배당금 송금도 통제 대상이 됐으며 미얀마 수입업자들의 대금 결제 또한 앞으로는 모두 FESC의 건별 심사를 받아야 합니다.
특히 수입대금의 통제는 이번 조치의 핵심입니다. 미얀마 금융당국과 상무부 모두 수입 억제를 통한 외환보유고 안정을 지속적으로 천명해왔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런 수입통제가 원칙이나 기준 없이 갑작스럽게 시행됐다는 점입니다. FESC는 규제 시행 초기 품목별 승인규정을 마련하지 않은 채 대부분의 대금 결제 요청을 무작정 반려하거나 보류했습니다. 이로 인해 국가 경제 및 산업은 물론 국민생활의 기본이 되는 가솔린, 디젤유 등 유류 수입이 일시적으로 끊기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4월 17일 저녁부터 운송업과 정유업 종사자들 사이에 유류 공급 중단과 재고 고갈에 관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으며 사회공유망서비스(SNS)를 통해 일반인들에게까지 실상이 알려진 4월 19일경에는 패닉 현상이 전국으로 확산됐습니다. 재고가 있다고 알려진 주유소에는 차량 행렬이 200m 이상 늘어서기도 했으며 주유소들은 차량당 주유량을 제한하거나 아예 영업을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전력난 때문에 디젤 발전기에 의존해 영업하던 상점들도 대부분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국적인 혼란은 뒤늦게 FESC가 유류대금 결제 승인을 내리고 주유소 영업 재개와 주유량 정상화를 강제하면서 해소됐습니다.
이처럼 한차례 큰 위기를 넘기고 난 뒤에야 수입대금 승인기준이 마련됐습니다. 수입대금 결제 승인 시 자국 산업과 국민생활에 필수적인 품목과 사치품으로 품목별 차등을 둔다는 원칙이 4월 말 발표됐으며 4월 29일에는 수입대금 해외송금 프로세스가 확정됐습니다. 수입대금 결제승인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는 아직까지 공지된 것이 없어 산업계의 혼란이 남아있기는 합니다.
확정된 수입대금 결제 프로세스는 크게 3단계로 구성됩니다. 첫 번째로 수입업자가 상무부에 수입 희망 품목을 사전 신고하고 심사를 거쳐 수입 라이선스(IL)를 획득해야 합니다. IL 심사는 이전부터 있었던 절차이지만 외환 조치와 더불어 더욱 엄격해졌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얀마 상무부에 따르면 우선 승인 대상 품목은 1순위인 의약품 및 수술실용 의료용품, 2순위 유류, 3순위 비료와 농약, 4순위 식품 원자재, 동물사료 및 동물용 의약품 그리고 5순위인 원단, 철강 등의 산업용 원자재로 제한됩니다.
이들 품목 외에 완성차, TV, 냉장고, 휴대폰 등은 사치품으로 분류돼 승인이 어렵습니다. 자국 산업에 직접 영향을 주는 품목만 사전 심사하던 기존의 IL 제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제가 강화된 것입니다.
IL 획득 이후에는 달러화 매입 승인이라는 더욱 어려운 절차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일단 미얀마투자위원회(MIC)에 등록된 외투기업이나 경제특구(SEZ) 입주 기업 등 일부 예외 적용대상을 제외한 모든 수입업자는 강제 환전 조치로 달러화가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대금을 지불하려면 FESC로부터 매입 승인을 받아 달러화를 다시 확보해야 합니다.
문제는 매입 허용에도 농축산물, 의약품, 유류, 식용류, 비료 등 우선 승인 대상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전반적으로 IL 우선 승인 대상과 유사한 품목을 제외하고는 달러화 매입이 허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현지 금융당국은 우리나라의 주력 상품인 화장품을 사치품의 한 종류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달러화를 확보한 다음에도 FESC의 해외송금 승인을 추가로 받아야 합니다. 물론 미얀마 금융당국은 달러화 매입과 해외송금을 가급적 한꺼번에 승인하겠다고 밝혔지만 해외송금 심사단계에서 검토되는 수출업체의 선적 완료 조건이 심각한 무역 애로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수출기업 입장에서 보면 상품을 선적하기 전까지는 미얀마 바이어로부터 대금을 받을 수 없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규정은 미얀마 바이어들의 대외 신용도를 고려하지 않은 비현실적 규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현지에서는 이번 조치가 최소 필수품을 제외한 수입의 전면 중단이나 다름없다고 보고 있으며 미얀마에 제품을 수출하는 우리 기업들도 상당한 피해가 우려됩니다. 특히 한류 열풍에 힘입어 현지 시장에서 선전해왔던 K-뷰티 제품과 생활 소비재 등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품들은 IL 획득에 난항을 겪고 바이어의 달러화 지급 지연 및 미결제로 인한 피해도 예상됩니다.
미얀마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도 상황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수입 허용 품목의 범위가 너무 좁아 현지 생산을 위한 원자재나 판매용 재고 조달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외환 조치 이후 우리 진출 기업들은 원자재 수입 승인을 거의 받지 못했으며 이로 인해 상당수 업체가 생산을 중단하거나 중단 위기에 몰려 있습니다. 판매법인들 역시 아슬아슬하게 안전 재고를 소진하며 사업을 이어나가고 있지만 미얀마 정부가 규제를 고수할 경우 영업을 오래 유지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결국 이번 조치로 미얀마가 단기적으로 외환 방어에 성공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일단 앞서 벌어졌던 유류대란이 다른 품목에서 재연될 가능성이 큰데, 미얀마의 생산 및 제조 역량만으로는 수입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위안화나 바트화로 결제되는 중국과 태국산 제품이 달러화로 이뤄지던 수입 상품 감소분을 얼마나 보완할지도 미지수입니다. 원자재 공급난에 따른 자국 내 생산 감소도 고려할 부분입니다. 미얀마의 생산과 고용을 상당 부분 책임지는 우리 봉제기업들 역시 자재 수급난으로 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결국 외환 조치 이후 예상되는 실이 득보다 훨씬 큰 셈입니다.
미얀마 기업들도 나름의 대응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특히 바이어들은 역외에 계좌를 두고 달러화 결제를 하는 ‘훈디(Hundi)’를 더욱 적극 활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아랍어로 ‘신뢰’를 의미하는 훈디는 미얀마처럼 외환 리스크가 높은 나라의 무역상들이 자주 이용하는 상거래 관행인데, 이번 조치로 더욱 활성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위안화와 바트화 수요가 높아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외환 조치는 달러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훈디를 활용하기 어려운 미얀마 바이어들은 대체 통화로 눈 돌릴 확률이 높습니다. 이 경우 중국 및 태국과의 국경무역이 활성화돼 우리 제품의 미얀마 수출이 위축될 수 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한 KOTRA 미얀마 무역관은 “미얀마 정부의 4·3 신 외환조치는 우리나라의 미얀마 교역과 투자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면서 “우리 기업들은 미얀마 정부의 추가 시행령 발표 동향을 면밀하게 관찰하면서 경영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한국무역신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