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한국인 입국제한’에 발목 잡힌 수출 어쩌나
정부 “무역에 지장 없게 예외조치 요청” 방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감염확산 저지를 위해 각국이 국가 간 이동에 제한을 걸고 있다. 이처럼 국가 간 이동제한이 걸리면 대외교역 비중이 높은 한국경제에 치명적이다. 3월 12일 현재 한국발 입국을 제한한 국가는 무려 123개국에 달한다. 이런 입국제한은 항공기의 운항 감축이나 중단으로도 이어져, 긴급한 상황에서 승인을 받고 이동하려 해도 교통수단이 없어 이동할 수 없게 만든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유럽 국가를 대상으로 3월 13일부터 30일간 미국으로의 여행을 금지했다. 인도는 3월 13일부터 4월 15일까지 외교관, UN 등 국제기구, 취업, 프로젝트 비자 등을 제외한 모든 비자의 효력을 정지(suspend)시키는 방식으로 세계 모든 나라로부터의 입국을 제한했다.
대한민국은 최근 코로나19 확산세가 커지고 있는 프랑스, 독일, 스페인, 영국, 네덜란드 등 유럽 5개국에 대해 3월 15일부터 ‘특별입국절차’를 적용하기로 했다. 기존에 중국과 홍콩, 마카오, 일본, 이탈리아, 이란에 적용하던 특별입국절차를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국가 간 이동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니 대면 수출입 상담의 창구였던 국제전시회들은 물론 각종 비즈니스 행사들이 대부분 취소됐다. 3월 미국 시카고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국제가정용품박람회와 4월 열릴 유럽 최대 가전전시회인 IFA의 사전 행사도 취소됐다.
앞서 2월 말 개최 예정이던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 MWC 2020과 글로벌 방송콘텐츠 영상마켓 ‘밉티비(MIPTV) 2020’도 개최를 포기했다. MIPTV 2020은 우리나라가 주빈국으로 선정돼 많은 준비를 해오던 행사다.
바이어를 만나기 어려워지면서 겨우 회복되기 시작한 수출에도 제동이 걸렸다. 더구나 세계보건기구(WHO)가 11일 코로나19에 대해 최고 경계단계인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함에 따라 향후 이런 상황은 더 심각해지고 더 오래갈 가능성이 짙어졌다.
▲한 방역업체 관계자가 지난 3월 10일 오후 서울 강서구 김포국제공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이날 한국과 일본이 양국 국민에 대한 90일 무비자 입국을 중단한지 이틀째를 맞아 평소에는 도쿄 하네다 공항행 여객으로 붐볐던 카운터는 한산하기 그지없는 모습이다. (서울=뉴시스)
●한국발 입국제한에 기업들 발동동 = 베트남은 한국에서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되던 2월말 한국인에 대한 신규 노동 허가와 상용비자 발급을 사실상 중단하고 무비자 입국도 임시 불허했다.
이 조치로 베트남 비즈니스는 큰 타격을 받고 있다. 현지에서 6월 진행될 예정이던 한국우수상품전시상담회의 바이어 초청 업무를 의뢰받았던 기업 관계자는 “코로나19에 대한 우려 때문에 바이어 섭외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2월 베트남에 동남아 최대 규모 R&D 센터 착공식을 진행하려 했으나 코로나19로 전격 취소해야 했다. 또한 코로나19 확진자 속출로 국내 스마트폰 공장 운영에 차질이 생겨 생산 물량을 베트남으로 일부 이전하려 했지만 베트남 정부가 한국인 입국자를 14일간 격리하기로 하면서 이마저 어렵게 됐다.
KOTRA 하노이무역관은 현지에 생산기지를 두고 있는 기업 중에는 기술진의 출장이나 파견이 이뤄지지 않는 바람에 생산라인 신설이나 증설을 못 하는 사례도 있다고 밝혔다. 3월 초 하노이에서 열릴 예정이던 ‘보안 및 방위산업 전시회(VIDSE Vietnam)’는 9월로 연기됐는데 이 전시회에는 한국 등 전 세계 120개 업체가 참가할 예정이었다.
이런 사례는 베트남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13일부터 모든 나라로부터의 입국을 제한한 인도의 경우 현대·기아차, 삼성그룹 등 주요 대기업의 필수 출장 인력 1000여 명이 입국하지 못한 상태다.
이양구 재인도한국중소기업인연합회(KOSMA) 회장은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수주에 성공했음에도 기술진이 입국하지 못해 애를 태우는 기업 등 피해 사례가 계속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KOTRA 뉴델리 무역관의 한 관계자는 “예정된 바이어 미팅이 갑자기 취소되거나 연기되면서 여러 한국 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산 소비재에 대한 불안감으로 한국산 제품 추가 수입 일정을 연기한 예도 있다”고 덧붙였다.
일본의 한국발 입국제한 조치도 부담이다. 교역 규모가 큰 데다 핵심 소재·부품 거래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해 수출 규제로 홍역을 치르면서 거래선 다변화 등의 노력을 했지만 오랜 시간 쌓아온 공급망 체계는 여전하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도 일본발 입국을 차단하면서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
●“기업인들만이라도 입국을 허용해 달라” 요청 = 외교부는 3월 초부터 터키, 중국, 베트남 등 기업 활동이 많은 국가를 중심으로 기업인 입국을 위해 다각적 협의에 나섰으며, 예외 조치를 요청하고 있다. 외교부는 이미 예외적으로 우리 기업인 입국을 허용한 국가도 있다고 밝혔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10일 기자들과 만나 “기업 활동과 관련해 해외에 나가려는 분들 중에 ‘14일 격리 지침’이 있어서 애로사항이 접수되고 있다”며 “국가별로 터키, 중국, 베트남, 인도, 쿠웨이트, 카타르 등이 구체적으로 접수되고 있다. 건강 확인서 등을 통해 편의를 봐줘서 기업 활동에 지장이 없도록 해 달라고 교섭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상대국도 댐 건설, 공장 가동 등과 직결된 것이라서 해줄 수 있는데 일부러 막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방역 상황 때문에 입국 규제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실제 공장이 안 돌아가면 상호 피해가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열심히 요청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튿날인 11일 기자들과 만난 한 외교부 당국자는 “어떤 곳에서는 큰 프로젝트가 있어 우리 인력이 들어가야 하는 데 대해 예외를 인정받았다”며 “코로나19 음성 증명서를 가지고 들어가 그 나라에서 발열 체크, 건강 질문서 등을 작성하고, 14일간 스스로 체온을 체크해서 보고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 사람 전체가 아닌 프로젝트 때문에 들어온 사람에 대한 예외를 인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방역 관련 물품 수출과 관련해 예외를 인정한 사례도 있다. 현지에서 항공 등 운송편이 중단된 상황에서 대사관이 교섭을 통해 현지에서 생산된 방역 물품을 한국으로 수출할 수 있도록 협의한 것으로 전해졌다.다만 외교부는 예외적 조치에 대한 현지의 반발 등 역효과가 있을 수 있는 만큼 구체적인 사안이나 국가에 대해서는 공개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 당국자는 “외국인 클리닉을 운영하는 정부의 의료기관에서 영문 양식을 발급하고, 병원에서 도장을 찍으면 ‘한국 정부가 지정하는 의료기관에서 발급한 것입니다’라는 안내문이 들어가 있다”며 “정부가 직접 인증하는 것은 아니지만 외국인 클리닉이 있고 믿을 만한 의료기관 도장을 찍으면 정부가 인증한 의료기관에서 발행한 것을 증명한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정부는 타국의 감염확산 우려를 완화시키기 위해 선제적으로 출국 시 발열 검사 등을 강화할 방침이다.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은 11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우리가 선제적으로 출국 시에도 체크한다는 걸 보여주면 상대 측에서도 충분히 감안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출국 시 발열체크 뿐만 아니라 건강 확인까지 포함해 철저하게 챙겨보겠다는 것이다. 항공사가 하는 것보다는 공신력 있는 정부기관이 하는 것이 상대방 입장에서는 믿음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부는 입국 금지 등 제한 조치 국가 증가세를 막기 위해 주한 외교사절단을 상대로 한국의 방역 조치를 설명하는 데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11일 해리 해리스 주한미대사가 인천공항을 찾아 미주행 승객에 대한 검역 시스템을 참관한 데 이어 다른 주한외교사절단도 검역 참관을 진행할 예정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10일 청와대 차원에서 기업인들의 해외 입국이 제한되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국내에서 건강상태 확인서 발급시 예외적으로 입국을 허용하는 방안을 다른 나라들과 협의를 통해 추진할 것을 지시한 바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지난 6일 레셉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의 정상통화에서도 양국 기업인의 상호방문과 협력이 매우 중요한 만큼 우리 정부가 발행한 건강상태 확인서를 소지하면 입국을 검토해 달라고 요청한 사실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관해 외교부는 이달 초부터 한국인 입국을 금지한 국가 중 24~25개국에 대해 사업상 방문이 불가피한 경우 코로나19 무감염 증명서를 발급하고, 입국 금지 조치를 일부 제외하는 등 방안을 협의해 왔다. 정부는 이 ‘무증상 인증제’에 대해 “검사결과가 음성이면 무증상 인증”이라는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거들고 나섰다. 전경련은 허창수 회장 명의로 한국발 입국을 제한하는 교역국에 철회를 요구하는 긴급서한을 발송했다. 발송 대상은 지난해 한국의 총교역액 중 교역 비중 1% 이상인 18개 국가이며 수신인은 해당 국가의 외교부·법무부 장관이다.
현재 한국발 입국제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 중국, 일본, 베트남, 홍콩 등 15개국에는 철회 요청 서한을 보냈고, 아직 관련 조치가 없는 미국, 독일, 캐나다 등 3개국에는 자유로운 입국을 계속 허용해달라는 내용의 서한을 발송했다.
[한국무역신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