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저점’ 경신한 원/달러 환율, 연말 방향은?
수출시장, 환율보다 산업 경쟁력 영향 더 커졌다

최근 글로벌 달러 강세에도 불구하고 원/달러 환율이 크게 안정화된 가운데 일각에서는 연내 달러당 1200원대에 달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사업 적정 환율을 1300원대 중반으로 꼽고 있는 가운데 환율이 지나치게 내려갈 경우 수출 채산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고환율 시기 채산성을 기준으로 계약을 체결한 수출기업이라면 환헤지를 하지 않았을 경우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환율은 달러당 1310원대에 근접하면서 연저점을 경신한 것은 물론 2년 만에 최저 수준에 달해 달러당 1300원 선을 위협할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10월 26일 원/달러는 장중 1320.6원까지 떨어졌으며, 이는 지난 6월 장중 1561.5원으로 연고점을 기록했던 것이 4개월 만에 달러당 240원 이상 떨어진 수치다.
10월 26일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원화의 지난 20일 기준 명목실효환율은 94.83(2020년=100)으로 2024년 10월 9일(94.91)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명목실효환율은 주요 교역 상대국과의 무역 비중을 반영해 통화 가치를 산출한 지표로, 수치가 상승할수록 원화 가치가 높아짐을 나타낸다.
한국은행은 환율 하락 여지가 더 있다고 내다보는 시각이다. 신현송 한은 총재는 22일 금융통화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몇 년간 달러 가치가 높아져서 교역 상대국의 가중치를 고려한 BIS 실효환율을 보는 게 중요하다”면서 “8월 말 기준 BIS 실효환율은 89 정도로 평균(101)보다 낮아 원화가 아직 약세라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이튿날 국정감사에서도 신 총재는 “원화가 추가 강세로 갈 여지가 있다”고 내다봤다.
●“여전히 원화 저평가”vs.“지금이 적정 구간”
금융권의 시각은 엇갈리고 있다. 환율 하락을 내다보는 쪽은 ▷반도체 중심의 수출 호조 유지와 기업들의 네고 물량 ▷한미 금리 차 축소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 효과 등을 지목하고 있으며, 환율 상승을 내다보는 시각은 ▷중동 지정학 리스크 ▷미 금리 인하 속도 조절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외국인 증시 이탈 등을 짚었다.
하나은행 외환파생상품영업부 이유정 연구원은 최근 연중 최저점을 기록한 원/달러 환율에 대해 “불과 얼마 전까지 1500원대 환율 속에서 추가 상승에 대한 기대와 쏠림 현상이 지배적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현재의 환율 하락 흐름은 시장의 시각이 ‘상승 기대’에서 ‘하락 기대’로 전환되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특히 “하반기 들어 수급 여건이 변화하며 그간 가려져 있던 펀더멘털이 부각되었고, 이는 곧 시장의 하락 기대 심리와 맞물려 하방 압력이 확대된 것”이라며 이는 극단적 저평가 국면을 지나온 원화가 실질 가치를 찾아가는 정상화 길목에 들어섰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풀이했다.
아울러 “지정학적 리스크나 연준 통화정책의 불확실성, 고금리 불안 등 환율 상승 리스크에 대한 경계는 늦추지 않아야 하지만, 앞으로는 구조적인 변화가 만들어내는 환율 하락 추세에 유연하게 대응해 나가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한편으로는 한동안 환율이 지금처럼 1300원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신영증권이 지난 10월 하순 발간한 연간전망 보고서에서 조용구 애널리스트는 원/달러 환율이 “달러지수와 주식·채권시장 지표 등 그동안 과도했던 괴리를 지난 7월 이후 급격히 해소하는 구도”라며 주요 12개국 환율을 통해 추정한 적정 상대가치는 달러당 1361원 수준으로, 한미 성장률 전망 격차를 감안해도 적정 구간에 진입했다고 평가했다.
향후 하락 속도를 늦출 요인으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상 전환과 중동 전쟁 장기화에 따른 고유가, 국민연금의 환헤지 중단, 배당금 역송금 및 대미투자 집행, 엔화 약세 등을 지목했다. 이 같은 요인들은 기술적 반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봤다.
다만, 중기적으로는 원화 강세를 뒷받침하는 여건이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조 애널리스트는 "경상수지 흑자 폭 확대, 대규모 주주환원, 국내 설비투자 증가로 원화 강세 압력이 유효하다"며 "중기적으로 1300원 내외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엔화 약세보다 한국 산업 경쟁력이 수출에 중요
한편으로는 원화 강세로 인한 수출경쟁력 약화 우려는 예전에 비해 줄어들고 있다는 지적도 등장했다. 최근 엔화 약세가 겹쳐 원/엔 환율이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총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10월 28일 발표한 ‘엔화 변동이 한국 수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엔/달러 환율이 10% 상승하면 한국의 달러 표시 수출단가는 1.43% 하락하지만, 단가 하락에 따른 물량 증가가 이를 대부분 상쇄해 수출금액 감소폭은 0.07%에 그치는 것으로 추정됐다.
엔화 약세로 일본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우리 기업의 수출단가 인하 압력이 커지더라도 가격이 하락한 만큼 수출물량이 늘어나 수출금액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설명이다. 주요 산업의 수출단가도 엔화보다는 산업별 업황 요인에 더 크게 좌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엔화 약세가 주요 산업의 수출단가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반도체·석유제품·자동차및부품 등 3개 품목은 엔화와의 뚜렷한 관계가 확인되지 않았으며 D램 가격(반도체), 국제 제품가격 지수(석유제품), 친환경차 수출 비중(자동차·부품) 등 산업별 업황 요인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철강·비철금속은 엔화 약세 시 수출단가 하락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기계의 경우 엔화 약세 시 미세하게 수출단가 하락했지만, 통계적 유의성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해당 품목들은 지난 10년 간 한일 수출 경합도가 낮아진 가운데 수출성장세에서 한국이 일본을 웃돌면서 경쟁력 우세를 점했다는 분석이다.

진옥희 한국무역협회 연구원은 “엔화 약세가 일본 제품과의 가격 경쟁에서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인식이 있지만, 주요 품목 상당수에서는 환율보다 산업별 업황이 수출단가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다만, 엔화와 원화의 변동성이 중장기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에 대비해 기업과 정부는 주요 산업의 비가격 경쟁력 강화에 힘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무역신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