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100달러 물가충격…워시 연준, 트럼프 맞서며 만장일치 긴축
트럼프 금리 인하 노골적 압박에도 인상 결정…물가안정 강한 의지 재확인
점도표는 연내 한차례 더 금리인상 시사…내년까지 고금리 이어지나

케빈 워시 연준 의장
좀처럼 잡히지 않는 인플레이션에 국제유가 급등이라는 물가 충격까지 덮치면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3년 2개월 만에 긴축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번 금리 인상 자체는 금융시장이 이미 상당 부분 예상했던 만큼 시장의 관심은 연준이 앞으로 금리를 몇 차례나 더 올릴지로 빠르게 이동한 가운데 연준 위원들은 점도표를 통해 연내 한 차례 추가 인상 가능성까지 시사하면서 긴축 기조가 이어질 가능성을 열어뒀다.
무엇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노골적인 금리 인하 압박에도 케빈 워시 의장을 필두로 한 연준이 물가 안정에 강한 의지를 보이며 만장일치 금리 인상 결정을 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 물가 둔화 확신 흔들린 데 유가 충격까지
이날 연준은 워싱턴 DC에서 이틀간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결과 기준금리를 연 3.75∼4.00%로 0.25%포인트(p) 인상했다. 2023년 7월 이후 3년 2개월 만의 통화 긴축 조치로, FOMC 위원 12명 전원이 인상에 찬성했다. 직전 회의에서 금리 인상을 주장한 위원은 3명뿐이었는데 한 차례 회의 만에 FOMC 위원 전체가 인상 쪽으로 돌아선 것이다.
연준이 긴축으로 방향을 튼 가장 큰 배경에는 인플레이션이 목표 수준으로 충분히 둔화하지 않은 상황에서 물가 상승 위험이 다시 커졌다는 판단이 자리 잡고 있다. 연준은 이날 성명에서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고 진단하면서 "위원회의 목표치인 2%로 보다 적시에 복귀하도록 뒷받침할 것"이라는 문구를 새롭게 추가했다.
그러면서 "위원회는 물가 안정을 달성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발표된 물가 지표도 연준의 판단을 인상 쪽으로 기울게 했다. 지난 11일 발표된 8월 CPI는 전년 동월 대비 3.4%,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식품을 제외한 근원 CPI는 2.4%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워시 의장은 이날 금리 인상 결정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올 여름 인플레이션 지표를 보면 기조적인 흐름이 의미 있게 개선됐다고 볼 수 없다"고 언급했다. 여기에 이란 전쟁 장기화 여파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면서 에너지 가격 상승이 물가 전반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커졌다.
이에 금리선물 시장이 반영한 0.25%포인트 인상 확률은 일주일 새 60% 수준에서 90%대로 치솟았다. 금리 인상 전망이 강화되면서 미 10년물 국채금리는 이번 주 장중 5%를 돌파하며 2007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평소 금융시장 가격에 담긴 신호를 중시해온 케빈 워시 의장으로서는 물가 지표 발표 이후 시장이 금리 인상을 기정사실로 한 상황도 외면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풀이된다.
◇ 한차례 인상은 이미 시장 반영…점도표, 연내 추가 인상 시사
이번 0.25%포인트 금리 인상은 시장이 회의 전부터 높은 확률로 반영해온 만큼 이제 관심은 추가 인상의 횟수와 시점으로 옮겨가고 있다. 연준 위원들은 이날 함께 공개한 점도표에서 올해 말 기준금리 전망치 중간값을 4.1%로 제시했다. 이는 직전 전망치인 3.8%에서 0.3%포인트 높아진 수준이다.
이날 금리 인상으로 기준금리 목표 범위가 3.75∼4.00%가 된 점을 고려하면 연준 위원들이 연내 0.25%포인트 추가 인상을 한 차례 더 예상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금리 전망치를 제출한 18명 가운데 16명이 연내 최소 한 차례 추가 인상을 예상했고, 현 수준에서 금리가 유지될 것으로 본 위원은 2명에 그쳤다. 추가 인상을 예상한 16명 가운데 4명은 연내 두 차례 추가 인상을 전망했다.
빌 더들리 전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앞서 "0.25%포인트의 금리 인상만으로는 경제 활동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치기에 너무 작다"며 통화정책이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데 상당한 시차가 있는 만큼 연준은 의미 있는 규모의 정책 조정을 한 뒤 경제 전망에 변화가 나타날 때까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프린시펄 자산운용의 시마 샤는 "(금리 인상) 만장일치 투표 결과는 에너지 가격 상승과 고질적인 인플레이션이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까지 설득했음을 보여주며, 한 번의 인상으로 끝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긴축이 2022∼2023년과 같은 가파른 연속 인상으로 이어질지는 불확실하다.
미국 경제가 당시와 같은 전반적인 과열 국면에 있는 것은 아닌 데다 이미 상당 기간 높은 수준의 금리가 유지돼온 만큼 연준이 향후 물가와 고용 지표를 확인하면서 인상 사이에 간격을 둘 가능성도 있다. 점도표 중간값에서도 2027년 말에도 4.1%로 유지돼 연준이 연내 추가 인상 이후 내년까지 금리를 동결하는 경로를 제시했다.
◇ 트럼프와 긴장 고조…"연준 독립성은 양방향 도로"
금리를 인상하면서 워시 의장이 자신을 연준 수장으로 지명한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정책을 둘러싼 충돌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11월 미 중간선거를 불과 7주가량 앞둔 민감한 시점에 이뤄진 이번 금리 인상은 공화당에 상당한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리 인상은 주택담보대출과 자동차 할부, 신용카드 등 가계의 차입 비용을 높여 고물가로 이미 커진 유권자들의 생활비 부담을 가중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FOMC를 수일 앞둔 상황에서도 "연준 공식과는 상관없이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금리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도 서슴없이 펼쳤다. 그럼에도 워시 의장은 결국 시장의 예상대로 금리 인상을 단행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금리 인하 요구보다 물가 안정에 우선순위를 뒀다. 워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연준의 독립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연준이 금리를 내리지 않으면 특정 국가들과 무역을 끊겠다'고 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한 질문에 "연준 독립성의 일부는 우리 차선(본연의 임무)을 지키는 것"이라며 "독립성은 양방향 도로"라고 답했다. 연준과 행정부가 서로의 정책 영역을 침범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론과 함께 통화정책 결정에 대한 독립성을 재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이번 금리 인상과 관련한 정치적 메시지나 직접적 함의를 묻는 말에는 선을 그었다. 그는 금리 인하를 요구해온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할 메시지를 묻는 말에는 "말씀드릴 것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연준의 금리 인상과 워시 발언이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으로 해석됨에 따라 증시는 하락하고 미 국채금리는 올랐다.
이날 뉴욕 증시에서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631.21포인트(1.21%) 떨어진 51,461.90에 마감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는 전장보다 33.92포인트(0.45%) 내린 7,551.81, 나스닥 종합지수는 3.15포인트(0.01%) 밀린 25,978.42에 장을 마쳤다. 10년물 국채 금리는 다시 5%를 넘어섰고, 통화정책에 민감한 2년물 금리도 큰 폭으로 올랐다.
[연합뉴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