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에 의한 반도체만의’ 수출… 위기 경보가 울린다
반도체를 빼면 수출 증가율 급락… 취약한 구조
반도체 자체도 메모리 편중에다 지정학 리스크
‘대한민국 무역호’에게 2026년은 아주 특별한 해다. 전쟁과 보편관세라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수출이 쾌속 항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무역기구(WTO)가 집계한 세계 수출순위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수출은 올해 1~2월 일본을 추월해 세계 5위에 올랐다. 유럽의 수출항구인 로테르담을 끼고 있는 네덜란드를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세계 수출4강’이 됐다.
하지만 언제든지 순위가 바뀔 수 있는 ‘불안한 4강’이다. 한국 수출이 반도체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5월 6일 인천 연수구 인천신항 컨테이너 터미널에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인천=뉴시스] |
●거의 모든 분야 기록을 갈아치우는 한국 수출
특히 수출은 거의 모든 분야의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지난 3월 중 수출액은 중동 전쟁에 따른 물류난과 원자재 공급망 불안에도 불구하고 전년 같은 달보다 48.3% 증가한 861억 달러를 기록하며 사상 처음으로 800억 달러를 상회했다.
4월에도 48.0%의 증가율을 보이며 858억9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이런 월간 수치는 1993년 우리나라의 연간 총수출액 822억 달러보다 40억 달러나 많은 수치다.
4월 말 현재 누계기준 수출 증가율은 40%에 육박하고 있다. 이는 수출 드라이브가 한창 진행 중이던 1974년의 수출 증가율과 엇비슷하다. 한마디로 현기증 나는 수출 증가율이다.
보다 면밀한 수출액 추이를 보여주는 조업일수를 고려한 일평균 수출도 3월 41.9% 증가한 37억7000만 달러에 이어 4월 48.0% 증가한 35억8000만 달러로 역대 최대 실적을 연이어 갱신했다. 24시간 통관 체제를 감안하면 시간당 1억6000만 달러어치를 해외시장으로 밀어내고 있는 셈이다.
●일본 앞질러 세계 5위에 오르다
덕분에 한국 수출은 일본을 추월해 세계 5위에 오른 것으로 확인된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대한민국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7.8% 늘어난 2199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 기간 일본의 수출(일본 경제산업성 발표)은 7.2% 늘어난 1895억 달러다.
한국의 글로벌 수출 순위는 세계무역기구(WTO) 발표 기준 1~2월 중 세계 5위다. 중국이 6566억 달러로 1위이며 그 뒤를 미국(3814억 달러), 독일(2984억 달러), 네덜란드(1598억 달러)가 잇고 있다.
한국은 1332억 달러로 5위, 일본은 1203억 달러로 6위, 이탈리아가 1183억 달러로 7위였다. 3월에도 한국의 수출 증가율이 일본을 크게 앞선 상황이어서 1분기 전체로도 일본과의 순위도 변동이 없고 네덜란드를 바짝 추격할 가능성이 있다.
●기록 경신의 원천은 반도체
최고의 수출효자는 단연 반도체다. 4월 중 반도체 수출액은 319억 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세 자릿수(+173.5%)의 신장세를 이어갔다. 앞서 3월에는 328억3000만 달러로 단일 품목 역대 최대 실적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뜀박질을 지속하는 가운데 인공지능(AI) 서버 투자 확대로 2개월 연속 300억 달러를 넘어선 것이다.
세계적인 AI 인프라 투자에 반도체 수요가 폭증하면서 한국의 반도체 수출은 지난해 4월 117억 달러로 100억 달러를 돌파한 이후 13개월 연속으로 월간 역대 최대 실적을 갈아치우고 있다.
대한민국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37.1%까지 치솟아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과거 20% 안팎에 머물던 반도체 수출 비중은 지난해 24.4%로 높아졌고, 올해 들어 가파른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2018년 반도체 슈퍼사이클 당시 20% 중후반이었음을 감안하면 우리 경제의 ‘반도체 쏠림’ 현상이 어느 때보다 심화한 셈이다.
더욱이 반도체는 달러당 환율이 1500원을 돌파하는 금융위기급 고환율에서도 무역수지 흑자에 일등공신으로 자리매김해 경제안보를 지키는 든든한 방패 역할을 신실하게 수행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난 3월 무역흑자액은 257억4000만 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210억1000만 달러나 증가하는 초유의 기록을 보였다.
이런 흑자액은 다른 연도의 최대 기록인 134억 달러(2017년 9월)보다 120억 달러나 많은 금액이다. 이에 따라 올해 1분기 누적 흑자액이 500억 달러를 넘어서 예년의 연간 수치를 이미 돌파한 상황이다.
●반도체를 빼니 수출 증가율은 급전직하
그럼, 반도체를 제외하면 어떻게 될까? 올해 3월 수출액에서 한국무역호의 기관차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반도체를 제외하면 수출 증가율이 전체의 3분의 1 수준인 18.4%로 급전직하한다.
지난해 수출 실적을 보면 더 충격적이다.
지난해 수출액은 외견상으로 모두로부터 찬사를 받기에 충분했다. 전체 수출액이 7093억 달러에 달해 전년보다 3.8%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연간 수출액 7000억 달러 돌파는 2018년 6,000억 달러 달성 이후 7년 만에 앞자리 숫자를 교체한 것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6번째로 도달한 것으로 수출강국 위상을 재확인시켰다.
이는 미국의 보편관세 장벽, 중국의 소비침체, 각국의 보호무역 확산 등 어려운 통상환경 속에서도 위기를 기회로 전환했다는 측면에서 매우 값진 성과라는 박수를 받기에 충분이다.
특히, 내수 부진 속에서도 수출이 성장엔진이자 일자리 창출의 보고임을 재확인하는 의미 있는 한 해였던 셈이다.
하지만 지난해 실적에서도 반도체를 제외하고 수출 증가율을 따져보면 어떻게 될까?
충격적인 수치가 등장한다. 수출액이 ‘1% 감소’로 돌아서는 것이다.
비슷한 추세는 2024년에도 그대로 확인되어 우연이 아님을 알게 된다. 지난 2024년에 전체 수출액이 전년보다 8.1% 증가했지만, 반도체를 제외하면 그 증가율이 1%대로 추락한다.
 ▲부산 남구 신선대(사진 아래) 및 감만(위) 부두 야적장에 수출입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부산=뉴시스] |
굳건한 ‘수출 4강’ 위해 ‘제2의 반도체’ 품목 발굴해야
30년간 주력품목 변화 거의 없는 대한민국 수출
반도체 호황기가 끝나면 어쩔 것인가 고민할 때
●‘반도체에 의한 반도체만의’ 수출 성장이 가진 함정
‘반도체에 의한 반도체만의’ 수출 성장은 아닌지 짚어봐야 한다. 경기에 따라 가격등락 민감도가 높은 반도체의 특성과 대체재의 등장이라는 최악의 수를 감안하면 섬뜩한 예측이 갑자기 현실이 될 수 있다.
미국의 미래학자이자 AI 연구가(구글에서 AI연구)인 레이 커즈와일은 ‘기술의 기반은 바뀐다’라면서 현재 실리콘 기반의 반도체 생산구조는 미래에 광(光) 컴퓨팅, 양자컴퓨터, 생물학적 컴퓨팅 등으로 변경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도체가 필요 없다고는 주장하지 않지만, 현재의 실리콘 기반의 반도체가 영원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오픈AI 공동 설립자인 피터 틸은 ‘진정한 혁신은 기존 기술을 대체하는 데서 나온다’면서 반도체도 예외가 아니며 반도체 산업에도 파괴적 기술의 등장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고 주창했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는 뉴럴링크(Neuralink)라는 신개념 기업을 설립했다. 이 회사의 핵심 비즈니스 모델은 ‘뇌와 컴퓨터 직접 연결하기’다.
초소형 전극(칩)을 뇌에 삽입하고 이를 컴퓨터 신호로 변환하여 생각이 곧 컴퓨터 조작으로 연결되도록 하는 것이다.
몸이 마비된 환자가 생각만으로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는 획기적인 시대가 개막되는 것으로, 반도체가 필요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반도체를 요구하는 시대가 다가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평한다.
●‘메모리 편중’ 반도체 구조의 리스크
반도체 수출의 더 큰 위험 신호는 한국의 반도체 산업의 구조적인 리스크에 기인한다. 한국은 모두가 알듯이 D램과 낸드 중심의 ‘메모리 편중 국가’다.
AI 시대는 단순 메모리가 아니라 ‘연산+시스템 +패키징’ 중심의 GPU/AI칩(엔비디아 주도)과 파운드리(TSMC 압도)가 더 중요하지만, 한국은 이 부분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또한 한국은 제조는 강하지만, 구조 설계는 약한 한계를 안고 있어 만약 HBM(고대역폭메모리) 이후에 메모리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감소하는 산업 체인저급 리스크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일본이 반도체 강국에서 이탈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더불어 한국은 반도체를 둘러싼 지정학적 공급망 시나리오에서 지극히 불안한 상태에 놓여 있다. 반도체 장비는 미국과 네덜란드가, 소재는 일본이, 그리고 시장은 중국이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기술에서 중국의 추격도 만만치 않아 반도체 강국이라는 타이틀은 언제든지 쉽게 붕괴될 수 있는 연약지반에 둥지를 틀고 있다.
중국은 야구로 보면 1부 리그 입성 직전의 강팀으로 국가가 주도하는 총력 투자라는 지렛대를 통해 5년 내 완전히 1부 리그 강팀에 진입할 것이라고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점치고 있다.
●‘제2의 반도체’급 수출품목 발굴·육성 절실
지금은 AI 시대를 맞아 대한민국이 글로벌 반도체 초호황기의 혜택을 누리고 있지만, 앞서 언급한 여러 리스크로 인해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다.
지난해 WTO가 집계한 대한민국 수출 순위는 8위였는데, 이는 2024년의 6위에서 두 단계나 떨어진 것이다.
당시 7000억 달러 달성이라는 축포에 이 순위 하락 소식은 묻혔다.
홍콩이 재수출 증가를 통해 한국을 추월했다고 평가절하 할 수 있지만, 이탈리아는 기계와 자동차라는 탄탄한 산업기반에 명품 패션을 중심으로 고부가 수출구조를 더욱 견고히 하는 양상이다.
이미 리스크는 우리 눈앞에 와 있다.
한국의 반도체 산업을 선도해온 삼성전자의 노조가 5월 21일부터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40%에 육박할 정도로 ‘반도체 쏠림’이 심각한 상황에서 반도체 산업의 핵심 축인 삼성전자가 파업으로 흔들리면 그 충격파가 국가 경제 전반으로 번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올해 1분기 ‘통과무역’ 국가인 네덜란드를 제외하면 중국, 미국, 독일에 이은 ‘수출 4강’이라는 한국의 장밋빛 희망이 환상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제2의 반도체급 수출품목 발굴 및 육성이 절실하다.
●수십 년 간 수출 10대 품목의 불변이 의미하는 것
이런 관점에서 꼭 짚어야 하는 내용이 있다. ‘30년 전인 1995년의 10대 수출 품목은 2025년의 10대 수출 품목과 얼마나 다를까?’라는 질문이 그 주인공이다.
1995년부터 현재까지 반도체와 자동차, 그리고 선박은 1~4위 내에서 선두권을 강하게 형성하고 있다.
특히 1995년도 10대 품목 중 30년이 지났지만, 반도체, 자동차, 선박, 컴퓨터, 철강, 합성수지 등 6대 품목이 그대로 10위 안에 머물고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20년 전인 2005년 10대 품목을 기준으로 하면 지난해와 반도체, 자동차, 무선통신기기, 선박, 석유제품, 컴퓨터, 합성수지, 철강판, 자동차부품 등 9개가 그대로였고, 2015년과 2025년의 10대 품목을 비교하면 플라스틱제품을 제외하고 9개 품목이 일치했다.
결론적으로 지난 30년간 1위 품목인 반도체 수출액이 10배가 늘어나는 등 외형적으로 크게 성장했지만, 새로운 주력 수출품목 발굴 및 육성에는 실패한 셈이다.
또한 10대 품목이 전체 수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995년 51%에서 30년 후인 2025년에는 61%로 10%p 상승했다.
대한민국 수출은 특정 품목에 대한 수출 의존도를 낮추어 안정적인 수출 구도를 만드는 과제와 중소기업 및 ‘본글로벌’형 스타트업 육성을 통한 저변 확대라는 숙제를 여전히 안고 있다고 하겠다.
[한국무역신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