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모았던 14차 각료회의서 WTO 개혁 합의 무산
전자적 전송 관세부과 유예조치 연장 실패
‘비위반․상황 제소’도 연장 합의 못해 종료
3월 26일부터 29일까지 카메룬 야운데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14차 각료회의(MC14)가 전자적 전송물 관세 부과 유예 조치 연장에 실패하는 등 당초의 낮은 기대치조차 충족하지 못하는 결과를 남기고 폐막했다.
각국 대표들은 폐회식까지 여러 차례 연기하며 전자적 전송물 관세 부과 유예 조치 연장 등을 비롯한 핵심 사안에 대한 합의 도출을 위해 노력했으나 의견 차이로 인해 결론을 내지 못했다.
한국 수석대표인 여한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번 회의에서 ▷WTO 개혁논의 가속화를 위한 작업계획 ▷전자적 전송 무관세 관행(모라토리엄) 연장 ▷투자원활화협정(IFDA)의 WTO 법 체계 편입 등 핵심 의제 논의에서 우리 정부 입장을 반영하기 위해 적극 활동했다고 전했다.
여 본부장은 이번 각료회의에서 우리나라 수석대표로는 최초로 ‘WTO 개혁 세션의 조정자(Minister Facilitator)’로 선임돼 개혁 논의 전반을 주도하고, 의사결정, 개발(S&DT), 공정경쟁환경 등 주요 의제에 대한 작업계획 논의를 이끌었다.
하지만 조정자들과 주요국 장관 등 핵심 협상 참여자들만을 소집하여 마지막 쟁점을 집중적으로 조율하고 최종 합의를 도출하는 ‘그린룸(Green Room) 회의’를 수차례 소집했음에도 최종 합의 도출에는 실패했다.
 ▲3월 26일부터 30일까지 카메룬 야운데의 제14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열렸다. [WTO/로이터=연합뉴스] |
●‘패키지’로 연결된 안건 무산돼 WTO 개혁 발목 잡아
WTO 개혁 작업 계획에 관한 각료선언문 문안에는 주요 회원국들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합의에 이르렀으나, ‘전체 합의를 위한 패키지’로 연결된 전자적 전송 무관세 관행(모라토리엄) 연장이 일부 회원국 반대로 무산됨에 따라 WTO 개혁 관련 합의가 각료회의의 최종적인 합의로 공식 확정되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자적 전송 무관세 관행은 미국의 영구적 연장 주장, 인도 및 브라질의 연장 반대 등 주요국 간 입장차로 금번 각료회의 기간 내내 최대 난제로 작용했다.
전자적 전송 무관세 연장 조치는 1998년 WTO 각료회의에서 처음 시행됐으며, 이후 각료회의마다 유예 연장에 합의하며 효력을 유지해왔다.
그간 미국 등은 유예 조치 영구화를 추진해왔으나 개발도상국들은 세수 감소 우려로 이를 꺼려왔다.
이번 회의에서 미국은 요구 수준을 낮췄고, 이에 따라 전날 유예 조치 5년 연장으로 합의가 도출될 것으로 전망됐으나 실제 이뤄지지는 못했다.
●전자적 전송 무관세 유예 만료됐지만, 국별로 관세부과 여부 선택
WTO 회원국 간 합의 실패로 전자책, 음악, 원격의료 등을 포함한 온라인 상품·서비스 관세 미부과 조치는 만료됐다.
다만 유예 조치가 만료됐다고 해서 전자상거래 관세가 자동으로 부과되는 것은 아니다. WTO 회원국은 유예 조치가 만료돼도 관세 부과 여부에 대해 개별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WTO 지재권협정(TRIPS 협정)상 ‘비위반․상황 제소(Non-Violation and Situation Complaint)’에 대한 모라토리엄도 2001년 이후 각료회의 계기마다 2년 단위로 연장에 합의되어 왔으나, 이번 MC-14에서 연장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지 못해 종료됐다.
‘비위반․상황 제소’는 협정 위반이 없더라도 특정 조치로 인해 협정상 이익이 침해되었다고 판단될 경우 제소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회원국들은 향후에도 WTO에서 전자적 전송에 대한 과세 문제와 함께 지재권 분야 비위반․상황 제소와 관련한 논의를 지속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14차 각료회의의 핵심 과제이자 유예 연장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된 WTO 개혁 문제는 5월 제네바에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일반이사회로 넘겨졌다.
한국과 칠레가 공동의장국으로 협상 타결을 주도해온 개발을 위한 투자원활화협정(IFDA)은 이번 회의에서 WTO 법체계 편입을 목표로 편입을 반대해온 국가에 대한 다각적인 설득 작업이 전개됐으나, 1개국이 반대 입장을 견지해 최종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66개국 WTO 전자상거래 협정 임시이행 선언 동참
이번 회의에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66개국이 WTO 전자상거래 협정의 ‘임시이행(Interim Arrangements)’을 선언함으로써, 그간 협상 타결 이후 WTO 편입 논의 지연으로 실질적 효력이 발생하지 못하고 있던 이 문제가 본격적인 이행 단계로 전환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참여국들은 임시 이행에 필요한 국내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며, 국내절차를 완료한 45개국이 수락서를 기탁하면 발효된다.
이번 임시이행 선언은 66개국이 참여해 만들어낸 디지털 통상 규범을 ‘합의’에서 ‘이행’으로 전환시킨 의미 있는 진전으로 평가된다.
이 협정에는 전자적 전송 무관세 유지, 전자서명·디지털 인증 활성화, 소비자 보호 등 디지털 무역 촉진을 위한 핵심 규범이 포함돼 있다.
이번 임시이행은 국경 간 전자상거래 절차를 간소화하고 거래 비용을 절감하며 디지털 서비스 제공 환경을 개선하는 등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 창출을 앞당길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 기업들은 글로벌 전자상거래 시장에서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플랫폼·콘텐츠 기반 서비스 확장을 가속화하며 디지털 서비스 수출을 확대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하게 됐다.
●여한구 본부장, 개별국가와 통상현안 논의 성과
한국은 각료회의 기간 중 미국 그리어 USTR 대표를 만나 한미간 통상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으며 셰프초비치 EU 통상집행위원과는 4월중 양국 통상수장간 ‘한·EU 차세대 전략대화’를 개최하여 반도체, 커넥티드카 등 첨단기술 및 공급망 조기경보시스템(EWS) 등 주요 관심사항을 논의하기로 했다.
특히 철강 TRQ 조치에 대한 우려를 전달하고, 산업가속화법, 배터리법, CBAM 등 주요 규범 명확화를 요청했다.
아울러 영국, 캐나다 등에 대해서는 철강 TRQ 조치 도입에 대한 우려를 전달하는 한편, 중동 정세로 인한 에너지 수급 등 안정화를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인도의 고얄(Goyal) 상공부 장관과는 대인도 수입 최대품목인 나프타(Naphtha) 공급 긴급 확대를 요청하고, 후속 실무협의를 추진키로 하였으며, 한-인도 CEPA 개선협상 재개를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각료회의 성과에 불만… 5월 제네바 회의로 넘어가
응고지 오콘조-이웰라 WTO 사무총장은 회의에서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며 5월 제네바에서 더욱 많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각료회의 성과에 관한 각국 반응은 긍정적이지 않다.
피터 카일 영국 산업통상장관은 다수의 회원국들 반응을 대변하며 “원했던 결과가 아니”라며 “공동 결정을 도출하지 못하면서 글로벌 무역이 크게 후퇴했다”고 평가했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역시 “회원국 다수의 진지함 부족은 실망스러웠다”며 “WTO가 전자상거래 관세 유예를 영구화하거나 2년 이상 연장하는 데 합의하지 못해 특히 답답하다”고 전했다.
이어 “다행히도 미국은 우리의 주요 무역 파트너 거의 전부와 수십 개국에서 미국의 디지털 전송에 관세를 부과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얻어냈다”고 덧붙였다.
[한국무역신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