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뉴스

해외뉴스
지구촌 덮친 ‘R의 공포’… 미·독·영·일 등 이미 진입?
  • 대륙전체
  • 국가전체
  • 업종전체
  • 품목전체
  • 출처
#무역전쟁,# 경기침체

2019-08-22 563

지구촌 덮친 ‘R의 공포’… 미·독·영·일 등 이미 진입?
미중 무역전쟁이 주요 원인… 글로벌 공급사슬에 엮인 ‘수출의존국가’들 더 타격

지난 8월 14일 뉴욕 증시에서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가 장중 620포인트나 떨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500지수와 나스닥지수도 장중 급락을 거듭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뉴욕 금융시장의 시선은 ‘채권’에 맞춰졌다. 뉴욕 채권시장에서 10년 만기 미국채 금리가 장중 1.623%까지 떨어지면서 2년물 미국채 금리(1.634%)를 밑도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장기채는 자금을 오래 빌려 쓰는 만큼 단기채보다 제시하는 수익률(금리)이 높은 게 통상적이다. 이런 원칙에 역행하는 것은 경기침체를 예고하는 신호로 여겨진다. 채권금리는 가격과는 반대로 움직인다. 경기 비관론 속에 장기물에 투자자금이 쏠리면서 채권값이 치솟았다는 뜻이다.

미국뿐만이 아니다. 경제 체력이 막강하기로 소문난 독일과 일본은 물론 싱가포르, 러시아 등 신흥국들의 경제도 벼랑으로 몰리고 있다. 전 지구촌이 ‘R의 공포’에 휩싸이고 있다. 여기서 R은 ‘Recession(경기침체)의 약자다. 경기후퇴의 초기 국면에서 경기가 하강과정으로 들어서는 전환단계다. 이 시기에는 경제활동이 활기를 잃어 그 규모가 전반적으로 축소되는데 생산, 소비, 투자, 소득, 고용 등이 감소하고 재고와 실업이 증가하기 시작하며 기업이윤은 감소한다. 통상적으로 최소 2분기 연속 GDP가 감소할 때 경기침체로 규정한다.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가 증폭하면서 뉴욕증시가 8월 14일(현지시간) 폭락했다. 이날 뉴욕주식거래소(NYSE)에서 한 중개인이 이마를 짚고 있다. 【워싱턴=AP/뉴시스】

미국에서 장단기 금리 역전이 발생해 세계가 충격을 받고 있을 무렵, 대서양 건너 유럽에서도 위험한 신호들이 잇달아 나왔다. 세계 4위 경제대국 독일의 올해 2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전 분기보다 0.1% 줄었는데 3분기에도 감소가 예상된다는 뉴스였다. 한 외신은 이를 두고 최근 ‘유럽의 성장엔진’인 독일의 경기침체가 이미 시작됐다는 진단을 받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는 월례 보고서를 통해 “GDP가 한 차례 더 소폭 감소할 수 있다”면서 “산업에서 계속되는 하강기가 주요 원인”이라고 밝혔다. 도이체방크도 독일의 3분기 GDP가 0.25% 역성장해 ‘이론상 경기침체(technical recession)’에 들어갈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독일 경제가 위기에 직면한 원인으로는 미중 무역전쟁이 거론된다. 분데스방크는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독일 경제가 미중 무역전쟁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둘러싼 불확실성 때문에 고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독일의 기간산업인 내연기관 자동차 업계가 환경규제 강화, 전기차와 자율주행차를 향한 기술혁신, 글로벌 경기 둔화에 타격을 받은 것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영국에는 ‘R의 공포’보다 ‘불확실성의 공포’가 먼저 왔다. 유럽연합(EU)과 아무 합의 없이 EU를 탈퇴하는 노딜 브렉시트 가능성이 커진 때문이다. 노딜 브렉시트는 영국을 완전히 새로운 교역 환경에 처하게 만든다. 그보다 ‘아직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불빛 하나 없이 가야 하는’ 미래가 현재의 경제에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8월 9일 발표된 영국의 2분기 GDP는 전 분기 대비 0.2% 줄어 2012년 4분기 이후 6년여 만에 첫 감소를 기록했다. 영국은 제조업, 건설업, 농업 등의 동반 역성장 속에 3분기에도 GDP 감소를 기록해 경기침체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를 사고 있다.

아시아에서도 심상찮은 징후들이 쏟아진다. 경제 규모가 세계 3위인 일본은 지난 7월 수출이 전년 동기보다 1.6% 줄어 8개월 연속 감소를 기록했다. 그뿐만 아니라 로이터의 단기경제관측조사(短觀·단칸)에서는 제조업 경기지수가 2013년 4월 이후 6년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서며 최저를 기록했다. <로이터 통신>은 일본의 수출 부진과 제조업 경기 위축의 원인을 미중 무역전쟁으로 지목하며 일본에 경기침체 우려 신호가 새롭게 등장했다고 해석했다.

마찬가지로 수출 의존도가 높은 싱가포르 역시 이 비바람을 피해가지 못했다. 싱가포르의 올해 2분기 국내총생산은 계절조정 연율 기준으로 전 분기보다 3.3% 감소했다. 싱가포르 통상부는 미중 무역전쟁, 중국의 경기둔화, 홍콩 정세 불안 등을 위협 요소로 지목했다.  전문가들은 싱가포르가 첨단제품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아시아 전역의 공급사슬을 망가뜨리는 미중 무역전쟁에 특히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경제연구소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미중 무역갈등이 단시간에 해소될 가능성이 작은 상황에서 싱가포르 경제가 3분기에 이론상 경기침체에 빠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선진국들에서 본격화하고 있는 ‘R의 공포’는 자원부국으로 이전되고 있다. 풍부한 원자재에 의지하고 있는 러시아 역시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타스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국립고등경제대학(HSE)의 기업추세연구소(CBTS)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미중 무역전쟁 격화에 따른 러시아의 경기침체 가능성을 제기했다. CBTS는 미국과 중국의 경제성장이 저하되면 글로벌 원자재 가격이 눈에 띄게 하락할 것이며 이는 러시아의 수출에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는 올해 1∼5월 전체 수출 가운데 80%를 에너지, 금속, 목재와 같은 원자재에 의존했다. CBTS는 “이런 메커니즘 때문에 재정, 환율, 물가 등에 문제가 발생해 러시아가 경기둔화를 넘어 심지어 경기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경기부양 카드 없는 중남미, ‘R의 공포’ 앞에 속수무책 = 8월 15일 브라질 상파울루 증시의 보베스파(Bovespa) 지수는 전날보다 1.2% 하락하며 99,056포인트로 거래를 마쳤다. 2개월 만에 100,000포인트가 무너진 것이다. 하루 전인 14일에는 미 달러화에 대한 헤알화의 환율이 3월 27일(2.27%) 이후 가장 큰 폭인 1.78% 오르며 달러당 4.041헤알까지 치솟았다. 환율이 4헤알을 넘은 것은 5월 말 이후 처음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아르헨티나 역시 증시가 대폭락하고 페소화 가치가 크게 떨어졌다. 대통령 예비선거에서 좌파 후보가 압승한 탓이라지만 경제 기초체력이 약한 게 근본 원인이다.

이렇게 ‘경제 중환자’들이 넘쳐나는 중남미의 문제는 ‘화타’가 살아 돌아와도 손을 쓸 수 없을 지경이라는 점이다. 미국이나 유로존, 일본 등 선진국들은 경기침체가 본격화하기 전 초저금리를 유지하면서 경기부양책을 마련할 수 있는데, 중남미 국가들은 재정정책이나 통화정책 면에서 쓸 수 있는 처방전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브라질의 경우 보우소나루 정부의 경제정책을 책임지는 신자유주의 경제장관 파울루 게지스는 정부 부채와 재정적자를 감축하겠다고 공언하며 공공 프로그램을 대거 축소하고 있다. 게지스 장관은 향후 10년간 1조 헤알(약 298조 원)을 아끼겠다는 계획 아래 올해 공공 지출을 340억 헤알(약 41조 원)로 동결했다. 브라질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는 78.7%로 역대 최고, 공적 투자도 역대 최소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경기 부양과 거꾸로 가고 있는 셈이다.

아르헨티나는 막대한 국가채무, 불안한 환율, 살인적 인플레이션, 정치갈등 격화 등 총체적 위기 속에 이미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중환자 신세다. 최근에는 ‘디폴트 위기’라는 말도 자주 나온다.

멕시코도 올해 GDP 대비 1%의 재정 흑자를 공언하며 재정지출에 족쇄를 채운 만큼 위기 대응력이 제한된 상태로 평가된다. 아르투로 에레라 멕시코 재무부 장관은 멕시코 경제가 가까스로 침체(2개 분기 연속 GDP 감소)를 면하자 255억 달러(약 30조8000억원) 규모의 경기부양 패키지를 발표했으나 재정이 얼마나 새로 투입됐는지는 불투명하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멕시코로서는 정부 부채가 GDP 대비 46%에 달해 역대 최고인 2016년 48.2%에 근접한 만큼 추가부양책이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경기를 떠받칠 다른 수단인 중앙은행들의 통화정책을 봐도 중남미에는 여력이 충만하지 않다. 금리가 미국보다 적당히 높게 책정되지 않으면 외자 탈출로 금융시장 혼란에 빠지기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과거보다 낮은 기준금리를 유지하는 중남미 중앙은행들은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다.

브라질은 이미 역대 최저인 기준금리 6%를 유지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경기침체 우려 속에 1%포인트 추가 인하를 점치고 있다. 멕시코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과거 3년간 5%포인트 인상한 덕분에 현행 8%에서 물가와 환율을 고려해 어느 정도 인하할 여력이 있으나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중남미 국가들 가운데 경제가 가장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칠레는 기준금리를 2.5%로 낮게 유지하고 있어 인하 여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로이터 통신>은 “중남미 국가들의 완화적 통화정책은 자국 주식, 채권 시장에 들어간 외국자본을 내보내는 핵심 동력”이라며 “브라질은 미국과의 금리 차가 이미 사상 최저이고 칠레, 콜롬비아도 10년여 만에 최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거의 무방비로 경기침체에 직면한 상황이다.

[한국무역신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