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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 무역역조는 언제 시작됐고 왜 굳어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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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무역

2019-07-19 2,200

대일 무역역조는 언제 시작됐고 왜 굳어졌나
1947년 민간무역 시작 이후 단 한 번도 적자 벗어난 적 없어

1965년 국교정상화와 수입절차 간소화로 적자 1억 달러 돌파
1967년 민간차관 확대로 전체 수입에서 일본 비중 40% 달해
197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하면서 부품·소재 일본의존 본격화
1990년대 이후 국산화개발 나섰지만 핵심부품 등은 계속 수입
최근 10년 누적된 대일 적자 한화로 약 307조3653억 원 규모

해방 이후 일본과의 민간무역이 시작된 것은 1947년 8월 15일 미군정 시절이다. 당시 한국은 수출할 물품은 없었고 국내에 필요한 물자는 많았으므로 당연히 수입초과였다. 이후 한국은 단 한 번도 대일 무역적자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공식 통계가 집계된 1957년 대일 수출은 1080만 달러, 수입은 3350만 달러로 무역수지는 2270만 달러 적자였다. 1960년 대일 수출은 2000만 달러, 수입은 7000만 달러로 무역적자는 5000만 달러로 확대됐다.

1965년은 한일 교역에서 큰 의미를 갖게 된다. 한일어업협정과 청구권협정, 재일한국인 법적지위가 포함된 한일조약이 비준됨으로써 양국 국교정상화가 이뤄졌다. 정부는 그 해에 변동환율제를 도입했으며 수입절차 간소화, 수출용원자재의 원활한 도입을 위한 조치, 수출쿼터제 폐지 등의 정책을 폈다. 그리고 같은 해 대일 무역적자는 1억 달러를 넘어섰다(-1억3000만 달러). 이듬해인 1966년 ‘한일무역협정’이 체결됨으로써 이전까지 청산계정에 의해 이뤄지던 양국간 교역은 최혜국대우, 수입쿼터 사전협의를 통한 1차상품 수입 촉진, 결제수단의 다양화 등 정상적인 교역으로 격상됐다.

이어 1967년 제1회 한일각료회의에서 민간차관을 5억 달러 이상으로 확대하는 내용이 합의됐다. 이 민간차관은 한국의 대일수입 확대에 ‘화력 좋은 땔감’ 역할을 한다. 일본은 한국에 돈을 꿔주고 상품을 팔았다. 그 해 한국의 전체 수입에서 차지하는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달했다. 일본은 미국을 제치고 제1수입국이 됐다. 4년 뒤인 1971년 대일 수입의 63%가 중화학공업품이었다. 중화학공업품의 수입이 많다는 것은 일본에 대한 소재·부품 의존이 본격화됐다는 뜻이다. 일본으로부터 도입한 자본재(기계류)는 지속적인 부품 수입을 초래했고 일본기계에 익숙한 기술자나 노동자들은 지속적으로 일본기계의 수요를 일으켰다. 화학제품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후 한국은 수입대체를 겸한 산업진흥 차원에서 중화학공업 육성에 나섰는데 이는 다시 대일 수입 확대와 부품·소재 의존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1968년부터 1977년까지 10년 동안 대일 수입은 연평균 26.1% 증가했다. 대일 무역적자는 1968년에는 6억 달러를 웃돌았고(-6억2300만 달러), 1974년에는 10억 달러를 돌파(-12억4100만 달러)했으며 불과 4년 뒤인 1978년에는 30억 달러를 넘어섰다(-33억5400만 달러). 이 무렵 국제수지 적자가 본격적으로 국가경제 이슈로 부상했다. 연이은 오일 파동까지 겹쳐 수입 여력이 줄자 이후 몇 년 동안 대일 적자가 다소 감소했으나 1984년 50억 달러를 돌파(-54억4300만 달러)했다.

정부는 1990년대 들어 본격적인 대일 역조 개선에 나섰다. 1991년부터 5년간 400여개 부품·소재 국산화 품목 고시를 통해 기술 지원을 했다. 10년 뒤인 2001년에는 ‘부품·소재전문기업 등의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제정해 10년간 1조4000억 원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구조적인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1994년 대일 무역적자는 100억 달러를, 다시 10년 뒤인 2004년 2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때의 부품·소재 국산화 정책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기도 했으나 이는 ‘확대되는 적자에 브레이크를 거는 역할’에 머물렀다. 부품·소재 특성상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엔 시간이 많이 걸렸으며 기술적인 한계도 있었다. 결국 2010년엔 사상 최대인 361억2000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정부는 곧바로 ‘10대 소재 국산화 프로젝트’를 통해 매년 1조원씩 10년간 10조원을 쏟아 붓기로 했다. 이후 예산 문제로 지원 규모가 줄기는 했지만, 이 프로젝트는 자동차·디스플레이 등 부품·소재 국산화 성공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최근 일본의 수출 규제에서 드러나듯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주요 산업에서 핵심적인 부품·소재의 일본 의존도는 여전하다. 금액 기준 대일 수입의 약 50%가 부품·소재다. 2018년 기준 대일 수입은 546억400만 달러이며 이중 부품·소재는 262억7045만 달러(일본의 대한 수출 기준)다. 같은 해 대일 무역수지 적자는 240억7500만 달러인데 이중 부품·소재 적자는 113억8000만 달러(일본의 대한 수출 기준)다.

2009년부터 2018년까지 최근 10년 동안 누적 대일 무역적자는 2607억 달러에 달했다. 7월 16일 환율로 한화 약 307조3653억 원에 달하는 규모다. 수출로 번 달러를 일본에 바쳤다는 뜻이기도 하다. 수출이 늘어날수록 일본으로부터 수입을 더 많이 해야 하는 무역구조는 싫든 좋든 일본을 이롭게 할 수밖에 없다. 나아가 일본이 부품·소재 등의 대한국 수출을 규제하면 한국의 수출, 나아가 국가경제 전체가 흔들리게 된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길은 기술개발 등을 통해 일본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것밖에 없다. 글로벌 체인으로 이뤄진 국제분업 무역구조에서 필요한 물품을 수입에 의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번 일본의 수출규제에서처럼 지나치게 높은 의존은 상대국에게 약점을 노출하고 언제든지 ‘멱살을 잡힐’ 위험성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무역신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