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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중국을 하나도 모른다 2018.11.30 ㅣ조회수 29
분류
해외시장
대륙
아시아
| 국가
중국
업종
전체
| 품목
전체
태그
중국, 이해, 정서

우리는 중국을 하나도 모른다

 

어릴 적 시골에서 명절을 쇠어본 사람들은 안다. 도시에 있는 가족이나 친지를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을. 멀리 들판을 지나는 버스가 우리 마을 앞 정거장에서 서는지 안 서는지가 가장 큰 관심사다. 혹여 서기라도 한다면 그 버스에 내린 이가 내가 기다리는 가족인지 목을 빼고 동구를 쳐다보게 된다. 도시에서 일하면서 선물 사올 누나나 형을 기다린 일이 없는 필자에게도 명절은 그런 작은 긴장들이 있는 시간이었다. 필자는 지금도 귀성행렬에 합류하지만 그 본능의 깊이가 얼마나 큰 지 가늠할 수 없다.


중국에 와서 보면 이런 마음이 더욱 더 크다는 것을 알게 된다. 중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과년회가(年回家)’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말 그대로 하면 ‘해를 지나기 위한 귀성’이다. 17년 전 각각 딸을 데리고 재혼한 부부의 가정에서 생긴 오해로 인해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부인을 따라온 딸 타오란(陶)이 남편을 따라온 딸 샤오친을 살인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고, 결국 타오란은 감옥에 간다. 17년을 감옥에서 지낸 타오란은 출소를 1년 앞두고, 귀성자 명단에 들어가 고향집으로 귀가하게 된다. 너무나 변해버린 고향 마을에 돌아온 타오란은 죄책감과 낯섦에 주저하지만 결국 고향 집은 그 시간을 지나 그녀를 감싸 안는다는 이야기다.


결국 고향, 집, 가족이 중국인들에게 주는 정서적 느낌이 얼마나 큰 지를 차분하게 볼 수 있는 영화였다. 얼마 전 국내에 번역 출간된 소설가 치우쉰의 ‘눈의 나라로’라는 소설도 그런 정서를 쉽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1933년생 산동 웨이팡 출신인 작가가 쓴 소설이다. 웨이팡은 이제 대도시가 됐지만 연(鳶)으로 유명한 전형적인 농업지역이다. ‘붉은 수수밭’이나 ‘개구리’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모옌의 고향 까오미와도 멀지 않은 곳이다.


당연히 작가는 군벌시대, 일제시대, 국공내전, 대약진, 문화대혁명과 개혁개방까지 험난한 현대사의 여정을 겪었을 텐데, 그가 이 소설에서 다룬 것은 중국인들에게 고향을 떠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보여준다. 이 소설은 이화샘이라는 맑은 샘 둘레서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 이야기다. 어느 날 이 샘이 나병을 치유하는 효과가 있다는 소문이 번지면서 이곳에 나병전용 시설이 들어선다. 그 바람에 기존에 살던 주민들은 헤이롱지앙성 헤이허로 집단이주해야 하는 처지에 빠진다.


좀 가깝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헤이롱지앙은 당시 기차를 타고 며칠을 가야하는 지역이고, 겨울이면 영하 30도가 기본인 차가운 곳이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기온에 살던 웨이팡 사람들에게는 혹독한 일이다.

 

하지만 이주에 예외는 없다. 댐 붕괴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지 얼마 안 되는 시추에 가족에게도 마찬가지다. 중국인들에게 고향을 떠나는 일은 가장 무서운 일이자 싫어하는 일이다. 하지만 당의 명령을 피할 수 없고, 결국 곡절 속에 마을 사람들은 기차로 수일이나 걸리는 헤이허의 화슈툰으로 향한다. 절기에 맞추어 자연이 변화는 산동성 농촌과 가을 중간부터 눈의 나라로 변하는 북방 마을이 같을 리 없다. 홀어머니와 세 남매가 겪는 고통과 그곳에서 겪는 일들을 읽다보면 그들의 신산한 삶이 한눈에 보인다.


결국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몇 가족은 당의 지시를 어기고, 고향 마을로 돌아와 나병환자들과 같이 살기도 한다. 그런데 차츰 이 샘물과 나병의 치료가 무관하다는 것이 밝혀지고, 결국 마을 사람들도 고향으로 돌아온다.


역시 이 지역 출신으로 이 책을 한국어로 번역한 두전하 교수는 이 소설이 “군사력·경제력 같은 것이 아니라, 꿋꿋이 살아가고 있는 순박하고 늠름한 인민이야말로 신중국을 지탱하는 힘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필자 역시 10년을 중국에 거주하면서 이 정서를 기까이에서 느낄 수 있었다. 한해가 지나는 춘지에(우리 음력 설날)가 찾아오면 다양한 문양으로 장식한 모든 집들에서는 가족들이 모여서 펼치는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중국에 거주하면서 한국 방송사의 프로그램 코디네이션을 했는데, 그 중 두 차례 정도 춘지에 때 귀성하는 사람들을 따라가는 방송이 있었다. 춘지에 한 달 전부터 도시에 나와 살던 농민공들을 포함한 사람들은 고향으로 향하는 대열에 합류한다. 가장 저렴한 수단부터 전세기까지 동원해 사람들은 고향집으로 향하고 한 달여를 가족과 같이 보낸다.


그런 사람들에게 고향을 떠나는 것은 죽음만큼이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이런 느낌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한다. 2000년 이후 산샤댐을 매년 취재하면서 이곳에서 이주하는 사람들의 애환을 봤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의 댐이 세워진다는 것은 그 만큼 많은 이주민을 만든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주민 가운데는 고향 마을의 고지대에 세워지는 신도시로 이주하는 이들도 있지만 더러는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경우도 많았다. 수몰을 1년 정도 앞둔 시기에 미처 마을을 떠나지 못하는 할머니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워낙에 사투리가 심해서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 애절한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고향을 떠났는데, 필자가 만났던 이주민 가운데는 조용히 고향 마을에 돌아와서 춘지에를 쇠고 가는 이들도 있었다. 지금이야 아무리 먼 지역이라도 이삼일이면 갈 수 있지만 10년 전만 해도 고향에 돌아가는 데 열흘 이상 걸리는 곳도 많았다. 무엇이 이들을 고향으로 향하게 했으며, 그런 정서의 근원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답해줄 수 있는 이들은 없다. 마치 우리민족의 정서에 자리한 수많은 한(恨)과 흥(興)을 다른 나라 사람들이 알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들에게 아무리 설명해 준다고, 당대 사람들이 가진 역사적 맥락과 흐름을 이해시키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더욱이 중국은 55개 민족이 산다. 민족 간의 정서는 천양지차다. 산둥성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한국과 가장 가까운 산둥반도의 끝 웨이하이는 이제 중국서도 유명한 살기 좋은 도시다. 그 옆에 있는 대도시가 옌타이다. 그런데 웨이하이 사람들에게 옌타이에 대해 좋게 말하는 것은 그다지 교류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거 웨이하이가 옌타이이의 행정권에 있었을 때, 홀대 받았다는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자주적 행정단위지만 그때의 정서가 남아 있어서 굳이 자신이 옌타이와 친하다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산둥성은 2017년 말 기준으로 상주인구가 1억6만 명가량이다. GDP도 7조2678억 위안(한화 1235조5000억 원 가량)이니, 한국과 별반 차이가 없다. 상승률을 감안하면 2년 정도면 한국과 같아지는 상황이다. 그런데 우리는 산둥은 어떻다, 중국은 어떻다, 너무 쉽게 판단하고 결론짓는다. 필자는 베이징에 관한 책만 3권을 썼다. 그런데 말한다. “제가 아는 베이징은 천만분의 일이나 될까요. 그런데 이 베이징도 반년에 한 번씩 뒤집어집니다. 제가 아는 베이징이 얼마나 될까요?” 하물며 중국이야 말해 무엇 할까.

 

[한국무역신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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